지키기 못한 약속

가톨릭부산 2015.11.04 08:01 조회 수 : 22

호수 2138호 2011.12.18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지키기 못한 약속

탁은수 베드로 / 부산MBC 뉴스총괄팀장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던 시절 이렇게 기도했다. “정의로운 기자가 돼서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성당 일도 열심히 하고 하느님께 저를 바칠 터이니 기자만 되게 해 주십시오” 하지만 신참 기자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새벽별 보고 출근해 달 떠야 퇴근했고, 예고 없는 사건 사고에 주말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주일 미사를 못 볼 때도 있었다. 가끔은 입사 전 주님과 한 약속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여유가 생기면 생각할 일이라고 제쳐놓았다. 이제 기자가 된 지 십수 년이 지났지만, 아직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경찰 기자 생활만 벗어나면 여유가 생길 것 같았는데 차장이 되고 부장이 되니 신경 쓸 일이 더 많고 바쁘다. 난 언제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간혹 바쁘게 사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듣는다. 성공을 위해서 더 열심히 달리라는 충고도 듣는다.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지금은 뒤돌아볼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숨을 헐떡이며 도달할 종착지가 어떤 곳일지 불안할 때도 있다. 승진을 위해, 좀 더 큰 집과 차를 위해, 아이들의 교육과 안락한 노후를 위해 애를 쓰지만 가끔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내 마음은 무얼 바라는지 잊고 사는 것 같다. 생활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하느님의 순위가 자꾸 밀려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다. 세상의 흐름 따라 부초(浮草)처럼 떠다니다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닌지 공허하고 불안하다. 
동양적 관점으로 표현하면 난 우화등선(羽化登仙), 선비처럼 살고 신선처럼 죽고 싶었다. 소신을 지키며 검소하게 살다 마지막엔 몸과 마음에 걸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갖고 싶은 것과 가진 것이 너무 많고 움켜쥐려 한 손이 무겁다. 몸과 마음의 살이 지나치게 기름져 번지르르 하지만 정작 내면은 외롭고 쓸쓸하다. 
더 멀어지기 전에 하느님께 돌아가지 않으면 영영 길을 잃을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죽기 마련이고 생명을 주관하시는 건 하느님이시라는 걸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가끔은 잊고 살 때도 있다. 대림초가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세상의 욕심 대신 주님을 찾는 눈길이 밝아지고 주님의 품안에서 살고 있음을 심장으로 느꼈으면 좋겠다. 마지막에 돌아갈 곳은 하느님 품안이란 걸 믿으며, 더 늦기 전에 하느님과의 약속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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