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로소이다

가톨릭부산 2015.11.02 11:25 조회 수 : 20

호수 1986호 2009.03.29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탁은수 베드로 부산MBC 기자 estak@busanmbc.co.kr 

봄이다. 간간히 꽃샘추위가 시샘을 부렸지만 어느새 완연한 봄기운이 우리 곁을 가득 채웠다. 나무들은 연두색 체액을 싱그럽게 머금었고 봄꽃들은 앞 다투어 화려한 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이 봄이 더욱 고마운 건 무수히 떨며 보낸 지난 겨울의 혹독함 때문이다. 경제 한파의 깊고 추운 그늘은 아직도 우리를 움츠리게 한다. 하지만 봄 햇살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와 지친 어깨를 감싼다. 그래서 봄은 지치고 추운 이들에게 새 생명의 온기를 전해주는 부활의 전령사다. 

하지만 봄은 그냥 온 것이 아니다. 봄꽃들은 지난 해 봄부터 꽃눈과 잎눈을 만들기 시작해 늦은 가을에 이미 봉오리를 준비해 뒀다. 그리고 한 겨울의 시린 추위를 이겨내고 봄볕이 전해지자 마침내 언 땅을 밀어내고 나온 것이다. 봄의 새 생명은 이렇게 준비하고 기다리고 견뎌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부활도 마찬가지다. 희생과 절제로 자신을 단련하고 단단한 세상의 유혹을 뚫어내야 부활의 충만한 기쁨을 얻을 수 있다. 봄꽃이 엄동설한의 고통을 이겨내고 새 생명을 이어가 듯 자신의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야 부활의 영광에 초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예수 부활의 의미를 선포해야하는 그리스도인은 공동체의 십자가도 함께 지고 가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유다 지방의 총독 ‘본시오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하고 군중에게 넘겨 준 뒤에 손을 씻었다. 자신은 예수의 죽음에 더 이상 책임이 없다는 상징적 행동이다. 군중들의 요구를 따랐을 뿐 예수의 고통과 죽음은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래전에 일어났던 이 같은 일이 요즘도 계속된다.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인간의 조건이 상처받고 권리가 억압받는 걸 보면서도 내 책임은 아니라는 방관이 수 없이 많다. 성당이 늘어나고 교회건물은 높아지지만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은 더 늘고 있다. 부당하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살 곳을 내어줘야 하는 절망도 계속된다. 한 끼 식사가 절실한 이웃들의 반대편에선 다이어트 열풍이 불고 음식 쓰레기가 넘쳐나는 모순은 흔한 풍경이 됐다. 불의를 보고서도 내 일이 아니라고 회피하는 ‘빌라도’는 지금도 엄연히 존재한다. 

봄 햇살이 얼음을 녹이고 땅이 녹아야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 수 있다. 그리고 햇볕과 바람이 힘내라고 속삭여야 비로소 꽃봉오리를 밀어 올려 봄소식을 전한다. 봄은 이렇게 서로를 도와주고 격려하며 모진 겨울을 이겼고 새 생명을 피워냈다. 이제 곧 부활이다. 흐트러졌던 마음을 다시 잡고 기쁜 마음으로 고통을 나누는 자세가 필요하다.
부활의 신비를 먼저 느껴 보고 싶다면 봄이 흐드러진 산으로 가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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