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와 피정
황성일 안셀모 / 교구평협 자문위원 dongaprint1@hanmail.net
긴 장마가 끝난 한여름이다. 이맘때쯤이면 여기저기서‘여름 휴가 이야기’가 나온다. 늘 그렇듯이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피서 휴가 인파가 몰린다.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으로 옮긴다는‘피서’와 일정 기간 쉰다는 뜻의‘휴가’. 이 두 단어를 보며 과연 어떻게 하면 피서 휴가를 잘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데 예년이었다면 휴가 계획에 콧노래가 나올 시기지만 여름 휴가가 다가옴에도 좀처럼 흥이 나지 않는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 이어 올해 연달아 이어진 사건사고들로 2015년 상반기 역시 온 국민의 마음은 상처투성이기 때문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기업가의 입장에서 보면 계속되는 경제 불황 등이 우리 경제에 발목을 잡고 있다. 그렇다고 휴가를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휴가는‘신앙 충전기’이기 때문이다.
신앙인의 입장에서 여름은 신앙생활에 나태하기 쉬운 계절로 인식되고 있다. 여름 휴가철이 되면 신자들의 주일미사 참석률이 20∼30% 줄어든다고 한다. 모두가 휴가를 떠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휴가는 더 필요하다. 일상에 찌들었던 메마른 영혼을 수련회 등으로 추스르기에는 이때만한 계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인데 일에만 매이지 말고 업무를 잘 조절해 피서와 휴가를 통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휴식처인 심향을 찾고, 또 평소에 다하지 못한 가족 간의 친화로 즐겁고 기쁘고 보람된 시간을 보내며 신앙인으로서의 모범된 피서와 휴가가 되면 어떨까? 그런 피서 가운데 피정이 어떨까 생각해본다.
‘피정’(避靜 retreat)은 한자어의 뜻 그대로 일정 기간 생활의 모든 일에서 떠나 고요한 곳에 머무르며 묵상과 자기 성찰 기도 등으로 영신을 수련하는 일이다.“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 28)며 우리를 초대하는 주님을 열린 마음으로 모셔서 휴식과 마음의 치유를 얻고 우리의 신앙을 다질 수 있다면 신앙인에게는 이보다 알찬 휴가가 없을 것이다. 특히 요즘은 피정의 내용과 형식이 다양해지면서 가톨릭의 고유한 색채는 물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런 피정을 통해‘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는 것도 우리들의 임무가 아닐까 싶다. 자신의 삶을 성찰해 새 출발을 하고‘나’라는 마음보다 서로 양보하는 마음으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진정한 피서 휴가를 맞도록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