탓짱 가족에게 길 내신 주님
김기영 안드레아 신부 / 일본 히로시마 선교 gentium92@yahoo.co.kr
어느날 밤 한 가족이 문득 사제관을 찾아왔다. 일본인 아빠와 필리핀인 엄마, 직장인 큰딸, 중2 작은딸, 초5 막내아들 이렇게 다섯 명이 우르르 몰려온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 밤에 전화 한 통 없이 일가족 모두가 찾아온 걸 보면 뭔가 대단한 결심이라도 하고 온 듯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작은딸과 막내 녀석 첫영성체 교리 좀 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내심 기뻤지만, 혹시 이 녀석들이 부모의 손에 질질 끌려온 것인지 아니면 본인들 스스로가 정말 교리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살짝 떠보려는 마음에“너희들 정말 열심히 할 수 있겠어?”하고 물으니 입술 꾹 다물고 나름 비장한 얼굴로, 밤하늘 별처럼 빛나는 눈망울을 보여주었다. 순간“주님, 감사합니다. 이런 복덩이들을 다 보내주시다니요.”라는 감사와 찬미가 흘러나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신자인 부인과 결혼을 하면서 남편도 필리핀에서 요셉이란 이름으로 영세를 받았단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영세를 시키긴 했지만, 일본어만 쓰는 아이들과 언어적 소통의 한계가 있다 보니 엄마로서 더 이상의 신앙 교육을 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었나 보다. 그래도 장 보러 가다가 성당을 지나칠 때면 멋모르는 아이들 손을 이끌고 잠시라도 성모상 앞에서 두 손 모으고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 마음을 보시고 지금의 만남까지 이끌어주셨는지도 모르겠다.
교리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롭다. 매주 목요일 저녁이면 아빠도 회사 작업복 차림으로 가족 모두가 미사 참례를 하고, 이어 교리책을 편다. 교리책의 성경 말씀이 비록 어린이용이라고는 하지만, 그 내용상 본성에 의지해 살던 인간이 믿음에 의지하고, 머리로 살던 이가 가슴으로 사는 이로 변화되어가는데 애어른이 따로 있지 않았다. 창조와 타락, 그렇지만 인간을 향한 더없는 사랑과 신뢰로 우리를 재창조하시는 하느님의 구원경륜에 감탄하면서 우리는 점점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10월은 묵주기도 성월이라 함께 묵주기도 바치는 법을 배웠다. 막둥이 탓짱에게 5단이 꽤나 지루했었는지 기도가 끝나자마자 한숨을 팍 쉬며 두 번 다시 하기 싫단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다음 주, 지난번 미사에 함께 했던 할머니가 눈 수술을 하고 아직 시력이 회복 안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나도 할머니를 위해서 기도할래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새 이렇게 성장해 준 모습을 보며 대견함과 고마움을 느꼈다.
올해, 시노두스(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주제는‘가정’이다. 급격히 변해가는 세상과 소통코자 하는 교회의 노력이 참 눈물겹다. 아직 풀어야 할 문제가 많지만, 탓짱의 가족과 함께 하시는 주님 안에 그 길이 있음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