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일생과 대림 시기
이정재 요셉 / 금정성당, 시조 시인
사계절을 번갈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낙엽을 날리며 해넘이를 거듭하는 나무들을 볼 때마다 자연은 하느님의 천지창조 질서와 조화를 따르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모습 그대로 산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을 숙명처럼 받아들여 산다는 이야기다. 우리 인간의 삶도 나무의 일생과 다름없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됩니다.”(1코린 15,14)라고 했다. 나무의 한해살이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부활을 확증하는 성찰의 시간이라고 한다. 산야 지천의 나무들이 묵은 잎새를 날리고 알몸이 되는 것은 다음 해를 기약하며 잎새를 밑거름 삼아 나이테를 늘려가는 성장의 시간이다.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렸던 천사가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아볼 수 있는 표징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라고 하였다.(루카 2,12 참조) 아기 예수님은 구중궁궐의 황금 요람이 아닌 마구간 구유에서 알몸으로 오심을 동방박사들도 경배하며 증거하지 않았던가?
대림 시기 첫날, 첫 주가 시작되었다. 구유에서 알몸으로 오실 아기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시기다. 동시에 교회 전례력으로는 새롭게 시작하는 첫날이다.
새로운 출발은 묵은 잎새를 벗어버리는 일이다. 한 해를 풍성하게 했던 기억들, 결과물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짐이 되었던 일들, 손해를 보아 억울한 일들, 극심한 갈등을 겪었던 일들..., 대림 시기는 모든 잎새를 벗어 놓고 지나간 1년의 일들을 되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은총의 시기라고 생각한다.
나와 이웃, 나와 하느님의 관계, 나와 예수님의 존재 등을 되돌아보는 일도 성장을 위한 일이다. 알몸으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나무를 생각하고,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성찰하고 자숙하고 기다리는 대림 시기가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