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539호 2019.04.21 
글쓴이 성지민 그라시아 

‘나’ 그리고 ‘너’인 당신과 더불어
 

성지민 그라시아 / 동래성당, 노동사목 free6403@daum.net
 

   저는 만으로 5년, 횟수로 6년째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바로 일을 시작한 저에게 첫 직장이 가지는 의미는 남달랐습니다. 일을 시작하고 첫해는 잘 몰라서, 두 번째 해는 그럭저럭, 여러 해를 넘기면서 웃는 일도, 우는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 덕에 별다른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두 분이 다 바쁘신 탓에 어렸던 저는 ‘왜 집에만 오시면 피곤해하실까?’하는 투정을 부리곤 했습니다. 어느 날 퇴근 하고 집에 돌아와 ‘아 피곤해.’라는 말을 무심코 내뱉던 순간 깨달았습니다. 왜 부모님이 그토록 피곤해하셨는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살며 노동하는 그 삶의 무게를 이제야 조금씩 알아갑니다. 생애 처음 4대보험 통지서를 받던 날, 440개월을 일하면 얼마를 받을 수 있다고 적힌 글을 보았습니다. 440개월, 고작 60개월 일한 저는 다가올 것 같지 않은 그 시간이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제가 청소년일 때 아버지가 일하시던 사업장이 사업주의 방만한 기업 운영으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관리직이셨던 아버지는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끝까지 사업장을 지키려 하셨으나 돌아온 건 마음의 병과 노동 현장에서 보낸 10여년 중 고작 3년 치 퇴직금과 밀린 임금 일부였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왜 3년 치 체불임금만 받아야 했는지. 이후 여러 소송을 통해 일부를 받게 되었지만 이미 망가진 마음과 시간은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 다 묻었다.”라며 옛 동료들과 통화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묻어납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지금의 나였으면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드릴 수 있었을 텐데 싶어 안타까운 맘이 듭니다.

   저의 일터는 천주교부산교구 노동사목, 외부에서는 ‘가톨릭노동상담소’라고 불립니다. 이를 통해 누군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저와 같은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사업주가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아 가족을 돌볼 수 없게 되었거나, 빨리빨리를 외치는 현장에서 보호구도 갖추지 못한 채 일하다 다쳤거나, 일한만큼 제대로 임금을 받고 있는지, 임금명세서에 적힌 내용을 확인하고 싶은,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노동자들입니다.

   가톨릭노동상담소가 이들과 함께 한 지 올해로 30년이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제 나이와 같은 가톨릭노동상담소. 앞으로의 30년도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형제, 자매인 당신의 옆에서 함께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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