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 대한 예의

가톨릭부산 2015.11.02 16:17 조회 수 : 279

호수 2065호 2010.09.05 
글쓴이 탁은수 베드로 

이별에 대한 예의

탁은수 베드로 / 부산MBC 기자, estak@busanmbc.co.kr 

늦더위가 길다. 여름은 진작 찬바람에 자리를 내어주고 내년을 기약해야 했다. 하지만 이별을 늦춘 여름이 가을의 길목을 막아서면서 환경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피곤도 늘었다. 이별에 더딘 여름의 와중에 또 하나의 아쉬운 이별소식이 들렸다. 온 국민을 감동으로 설레게 했던 피겨요정 김연아와 그의 스승이 얼굴을 붉히며 돌아섰다는 소식이다.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기 전에 많은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받았던 두 사람의 상처투성이 이별은 아쉬움이 컸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경우도 있었다. 청문회를 통해 부끄러운 모습이 드러난 고위공직자 후보들 가운데 몇몇이 결국 예정된 자리를 떠나야했다. 떠나는 뒷모습은 씁쓸했다. 누군가 그랬다.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고.

세상의 이별 중에 가족을 떠나보낸 것보다 더 큰 슬픔이 있을까. 하지만 최근 다녀온 한 장례미사에서 아름다운 이별을 보았다. 언론계 큰 선배의 장례미사였다. 가족과 친지들은 극한 슬픔 속에서도 담담히 이별을 받아들였다. 하느님 품안에서 다시 고인을 만날 희망과 약속을 믿는 거룩하고 엄숙한 이별이었다. 이별의 온기가 오래도록 남는 경우도 있다. 두 다리를 쓸 수 없는 장애에다 암과 싸우면서도 불굴의 의지를 아름다운 글로 써내려간 영문학자 故 장영희 교수. 장 교수가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며 남긴 퇴직금과 인세가 얼마 전 제자들의 첫 장학금으로 전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얼마 전 임기를 마친 김영란 대법관은 막대한 수임료와 전관예우를 포기했다. 여성 최초의 대법관으로 법조계 최고 정점의 자리를 떠나면서 변호사 보다는 봉사의 길을 찾겠다고 밝혔다. 찾아보면 주변에는 아름답게 준비된 이별도 많고 감동을 주는 이별도 많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한다. 중요한 사람과의 만남이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에서 무언가는 떠나 보내야하고 무언가는 받아 들여야 한다. 그 숱한 만남과 이별의 과정에서 난 어떤 예의를 지키고 있을까? 짧은 내 생각엔 예의 있는 이별의 공통점은 ‘배려’다. 내 입장만 생각하고 내 생각만 강조해서는 이별의 예의를 갖추기 힘들다. 이별 뒤에 남겨질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 그래야 지나 온 시간들이 누추하게 버려지지 않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 때론 단호하고 현명한 이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남 보기 부끄러운 즐거움이나 쓸데없는 욕심을 채우기 위한 만남과 이별은 그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이별 뒤에 난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그 모습을 하느님은 어떻게 지켜보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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