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성모님

가톨릭부산 2018.09.12 11:07 조회 수 : 117

호수 2506호 2018.09.16 
글쓴이 김나현 가브리엘라 

우리 집 성모님
 

김나현 가브리엘라 / 수필가  yanni33@hanmail.net
 

   이사 온 첫날 밤에 딸이 꿈을 꾸었다고 했다. 가슴까지 덮은 이불을 들추고서 산발한 귀신이 목을 쑥 내밀더라는 거다. 꿈에서 얼마나 놀랐는지, 꿈 얘기를 할 때 딸 표정도 다시 파랗게 질렸다.
   그런 식의 꿈을 이사한 후에 더러 꾼다는 믿건 말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에 내심 걱정이 되었다. 비슷한 꿈을 또 꾸면 어쩌나 해서다. 고심하던 머릿속으로 구원자가 떠올랐다. 바로 성수였다. 이보다 나은 대처는 없다는 확신으로, 딸 방과 다른 방까지 구석구석 뿌리며 중얼중얼 기도했다. 방마다 성모상과 묵주도 비치했다. 후로는 다행히 그 같은 꿈을 꾸는 일은 없었다. 성수와 성모님 덕분이라고 굳게 믿었다. 
   우리 집에는 성모상이 네 개 있다. 딸이 꿈을 꾼 후 서둘러 방마다 하나씩 모셔 두었다. 거실에 둔 성모상은 키가 30cm 정도의 일반적인 은혜의 성모상이다. 다른 성모상은 이래저래 상처 입었는데 이 성모상만 온전하다. 바라만 봐도 평온해지는 표정이다.
   딸 방에 둔 갈색 성모상은 대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 손자가 떨어뜨려 가슴팍에서 두 동강이 났다. 나는 그때 사람이 다친 양 비명을 지르곤 접착제로 붙여 놓았다. 그 후 같은 곳이 또 부러져 땜질했다. 어깨를 앞으로 살짝 수그리고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이 늙은 내 어머니를 연상케 한다. 표정은 어찌나 정결하고 해맑고 여린지, 오히려 보듬어 주고 싶은 성모상이다.
   안방 성모님도 목부터 어깻죽지까지 땜질 흔적이 있다. 역시 손자들 손에 떨어져 다쳤다. 잠자는 머리맡에 둔 성모상은 조그맣고 낡고 볼품없다. 언제 부러졌는지 조그만 손 하나가 부러져 나가고 없다. 그러나 이 성모님은 잠자는 나를 지켜주고 빛으로 당신 존재를 알린다. 야광 성모상이다. 밤중에 잠시 깰 때 환히 빛나는 형체에 눈이 닿으면 두 손을 모으거나 성호경을 긋고 자리에 눕게 된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양을 한 마리 두 마리 세는 게 아니라 주모경을 외게 하는 성모님.
   성모상을 한자리에 모아 오랜만에 먼지를 닦는다. 어떤 간절함이 있을 때나 닥친 큰일 앞에 기도 말고는 할 게 없어 무력할 때 묵주와 함께 찾는 우리 집 성모님들. 
   내 능력 밖의 지혜가 필요할 때나, 잠시 옆길을 걸을 때도 나를 변함없이 지켜보고 인도하는 성모님이 우리 집에 계시다.

호수 제목 글쓴이
2810호 2024. 4. 28  나를 찾아오신 때 최옥 마르타 
2809호 2024. 4. 21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61차 성소 주일 담화(요약) 프란치스코 교황 
2808호 2024. 4. 14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창식 프란치스코 
2807호 2024. 4. 7  나의 행복 리스트 한미현 에스텔 
2806호 2024. 3. 31  무덤을 허물고 일어나 탁은수 베드로 
2804호 2024. 3. 17  뿌리 찾기와 순교자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2803호 2024. 3. 10  참 삶의 길 윤경일 아오스딩 
2802호 2024. 3. 3  나에게 새로운 삶을 주신 분 유효정 마리스텔라 
2801호 2024. 2. 25  일상 속 작은 실천 김도아 프란체스카 
2799호 2024. 2. 11  신비롭게 연결되어 있는 인간의 몸처럼 손주희 레지나 
2798호 2024. 2. 10  배우고, 배운 것을 버리고, 새로 배우자! 원성현 스테파노 
2796호 2024. 1. 28.  “없는 이에게 베푸는 일을 미루지 마라.”(집회 4,3) 조수선 안나 
2795호 2024. 1. 21  연중의 삶 속에서 강은희 헬레나 
2794호 2024. 1. 14  새 사제 모토 및 감사인사 file 가톨릭부산 
2793호 2024. 1. 7  일상 가운데 함께 계시는 하느님 박수현 가브리엘라 
2791호 2023. 12. 31  세상을 건강하게 하는 백신, 성가정 우세민 윤일요한 
2785호 2023. 11. 26  제39회 성서 주간 담화 (2023년 11월 26일-12월 2일) 신호철 주교 
2783호 2023. 11. 12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13) 최재석 사도요한 
2782호 2023. 11. 5  나만의 고유한 인생길 file 임성근 판탈레온 신부 
2781호 2023. 10. 29  아버지의 이름으로 탁은수 베드로 
색칠하며묵상하기
공동의집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