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밭에 계신 하느님

가톨릭부산 2018.07.11 14:03 조회 수 : 167

호수 2497호 2018.07.15 
글쓴이 김상진 요한 

감자밭에 계신 하느님
 

김상진 요한 / 언론인 daedan57@hanmail.net
 

   얼마 전에 텃밭에서 감자를 캤다. 호미로 두둑을 헤치자 감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감자밭을 헤집고 다니는 동안 모든 잡념은 사라지고 오로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감자밭에서 만난 하느님은 이랬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느라 그 작은 씨감자 한 조각에서 5∼10개의 새 감자를 맺게 하셨다. 감자밭에 굼벵이 약은 물론 농약을 전혀 치지 않았더니 대부분 감자에는 굼벵이가 파먹은 흔적이 남았다. 굼벵이 상처는 보존성을 떨어뜨리고, 감자를 빨리 상하게 했다. 그럴 줄 알았지만 내가 덜 먹고 굼벵이와 나눠 먹자는 생각에 약을 치지 않았을 뿐이다.
   감자밭에 굼벵이가 살게 하는 데도 뜻이 있었다. 감자는 뿌리가 따뜻해야만 수확량이 많다. 그래서 관행농법은 검은 비닐 피복을 씌운다. 나는 비닐피복도 하지 않고 농약도 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많은 굼벵이 때문에 감자 농사를 망치는 게 맞다. 그러나 나의 감자 농사는 관행농법의 80% 수확은 거두었다. 그 이유는 두더지 때문이었다. 두더지가 굼벵이를 잡느라 땅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흙 속에 바람구멍을 많이 만들었다. 그 바람구멍을 통해 한낮의 따뜻한 공기가 감자 뿌리까지 닿았다. 여기에다 굼벵이가 흙을 떼알 구조로 만들면서 흙 속의 수분과 양분을 넉넉하게 만든 효과도 봤다. 덕분에 내 감자는 굼벵이 자국은 있지만 싱싱하고 맛이 좋았다.
   아하, 굼벵이라는 미물도 헛되이 창조하신 것이 아니구나. 또 굼벵이가 마구 번식하지 못하도록 두더지라는 천적도 창조하셨구나. 하느님의 계획아래 창조되지 않은 생명체는 없구나. 그러한 묵상들이 떠올랐다.

   씨감자를 심을 때 작은 것은 통째로, 큰놈은 여러 조각으로 잘라서 심었다. 그런데 통째로 심은 감자보다 여러 조각으로 자른 씨감자에서 많은 감자가 열렸다. 상처와 시련이 더 많은 성과를 거두게 하시는구나.

   아울러 우리가 시중에서 구입하는 겉이 매끈한 감자에는 얼마나 많은 굼벵이 약이 뿌려졌는지도 알았다. 자연과 공생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욕망이 굼벵이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 병들게 하고 있었다.

   농부는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맡은 첨병이다. 인류의 첫 직업이기도 했다. 그토록 신성한 직업인데도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농민 주일을 맞아 농업과 농부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한다.
 

호수 제목 글쓴이
2339호 2015.08.02  휴가와 피정 황성일 안셀모 
2449호 2017.08.27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황규하 이냐시오 
2470호 2018.01.07  Sure, Why not? (그 뭐시라꼬!) 홍영택 신부 
2756호 2023. 5. 7  [젊은이에게 보내는 편지] 중독으로부터의 해방 홍성민 신부 
2606호 2020.07.19  한 끼의 힘 현주 라파엘라 
2622호 2020.11.08  내 마음의 평화 현주 라파엘라 
2356호 2015.11.29  기다림 현애자 로사리아 
2713호 2022. 7. 10  매듭을 풀다 현애자 로사리아 
2641호 2021.03.07  오후 5시 한옥선 율리아 
2673호 2021.10.17  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하여 한영해 아가다 
2807호 2024. 4. 7  나의 행복 리스트 한미현 에스텔 
2535호 2019.03.24  제34차 세계청년대회 참가자 수기 -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한그린 미카엘라 
2023호 2009.11.29  도보 성지 순례 하창식 프란치스코 
2036호 2010.02.14  비행기도 하느님이 창조하신 걸까? 하창식 프란치스코 
2048호 2010.05.09  묵주의 9일 기도 하창식 프란치스코 
2060호 2010.08.01  부끄러운 고백 하창식 프란치스코 
2073호 2010.10.24  내가 먼저 미소를 [1] 하창식 프란치스코 
2081호 2010.12.19  성모님의 삶을 묵상하며 기도합니다. 하창식 프란치스코 
2146호 2012.02.05  작은삼촌 하창식 프란치스코 
2154호 2012.04.01  만우절 하창식 프란치스코 
색칠하며묵상하기
공동의집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