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489호 2018.0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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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성지민 그라시아 |
당신이 몰랐다고 말하는 순간에
성지민 그라시아 / 초량성당, 노동사목 free6403@hanmail.net
노동사목에서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운 일을 상담하고 도움을 주는 역할입니다. 지금은 그 횟수가 줄었다고는 하지만“3달째 임금을 못 받았어요.”“사장님이 퇴직금 안 줘요.”“친구가 프레스기에 손가락이 잘렸는데 어떻게 해요?”등의 내용입니다. 상담 후 먼저 하는 일은 내용 확인을 위해 사업주와 통화하는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업주나 담당자는 사실을 확인하고 잘못 알고 있거나 처리된 부분을 시정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주지만, 그렇지 못한 사업주와의 통화는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1년 이상 일한 노동자입니다. 퇴직금 주셔야 되는데요?’대답은‘아, 몰랐습니다.’
-‘급여명세서 금액이 안 맞는 것 같아서요.’상대방이 짜증냅니다.‘뭐가요?’한숨을 쉽니다.‘연장·야간근무 수당이 제대로 계산이 안 된 것 같네요. 최저임금으로 계산 하신 것 같은데요? 1.5배 계산이 안 되었네요.’대답에 시간이 걸립니다.‘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네요. 확인해 볼게요.’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하려고 합니다.’당황해 합니다.‘가입 안했는데요.’짜증이 납니다.‘산재보험은 4대보험 가입 안 되어있어도 신청 가능합니다.’의심스런 말투로 대답합니다.‘그렇습니까? 몰랐습니다.’저는 묻습니다.‘그런데 왜 4대보험 가입을 안 하신 건가요?’
-‘계약 할 때 월 200만원 준다고 하셨죠?’천연덕스럽게 대답합니다.‘아 그거는 일 많을 때 이야기고 지금 일 없어. 당장 내보낼 수도 있는데 데리고 있는 거라니까.’화가 납니다.‘근로계약 위반입니다. 5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해고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업장 귀책사유로 노동자가 일을 쉬면 휴업수당도 챙겨주셔야 합니다.’저에게 소리칩니다.‘뭐라고??’
전화를 끊고 난 뒤에도 좀처럼 화가 가시질 않습니다. 심장이 벌렁벌렁 하루 종일 멍한 상태이기도 합니다. 이주노동자들만의 문제라고 하기엔 같은 상황들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습니다.‘근로기준법’과 같은 법들은 왜 만들어졌을까요? 무시해도 좋을 법이라면 애초에 만들지 않았겠지요? 하느님 법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가 살면서 지켜야 할 법들을 당신이 몰랐다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바로 그 순간, 하느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신성한‘노동’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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