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배려를 내어주세요.

가톨릭부산 2022.05.18 10:13 조회 수 : 20

호수 2706호 2022. 5. 22 
글쓴이 김도아 프란치스카 
잠깐의 배려를 내어주세요. 

 
 
김도아 프란치스카 / 장림성당 · 노동사목 행정실장


 
   몇 년 전, 지금처럼 햇살이 따사롭던 봄날 저는 돌쟁이 아이와 함께 외출을 시도했습니다. 유아차에 아이를 태우고 잠시 산책을 나갔다가 차를 한잔 마시려던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10분도 되기 전에 외출을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유아차가 오를 수 없는 수많은 턱과 계단 그리고 인도 위 장애물들로 인해 차도를 위험하게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겨우 지하철역까지 간 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몇 번이나 뒤로 밀렸습니다. 자리를 차지하는 유아차를 불편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사람, 슬쩍 앞으로 끼어드는 사람, 심지어 왜 이렇게 커다란 유아차를 들고나왔냐고 나무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하기 위해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약자는 눈치 보며 사용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된 시위가 20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려다가 추락한 장애인이 숨진 사건 이후로 20년이 흘렀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편하게 이용하는 수많은 것들은 장애인의 시위를 통해 얻어졌지만, 우리는 주위에서 장애인을 자주 볼 수 없습니다. 장애인의 수가 적거나, 그들이 외출이 불필요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유아차와 함께 외출했을 때와 같이 그들이 이동하는 데 수많은 제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 시위에 불편하다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와 글을 보면서 참으로 슬프고 답답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이동권 보장 요구는 생존과 관련된 아주 필사적이고 처절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출퇴근 시간에 타인의 불편함을 야기하면서까지 지하철을 지연시키는 이유는 그래야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장애는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약 9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는 인식,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한 도움은 불쌍해서가 아니라 불편하지 않은 이가 당연히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나눠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할 때입니다. 장애를 가진 이들도 은행과 병원 업무를 봐야 할 일이 있고, 계절을 느끼려 외출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동에 배려가 필요하다면 사회는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는 그러한 배려를 흔쾌히 내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노동사목에서의 일이, 주님의 가르침과 같이 보다 낮은 곳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라서 참으로 좋습니다. 이러한 배려가 보다 다양해지고 평범한 일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하면 더욱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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