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친구에게!

가톨릭부산 2020.06.10 10:20 조회 수 : 21

호수 2601호 2020.06.14 
글쓴이 정영옥 크리스티나 

보고 싶은 친구에게!
 

정영옥 크리스티나 / 정관성당
 

   오늘 문득 너가 생각나 앨범을 꺼내 보았어. 베레모 쓴 검은 교복이 새삼 새롭더라. 너는 친구들이 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늘 성호를 긋고는 점심을 먹었어. 나는 광안리에 있는 군법당에 다니고 있었고, 너가 다니는 성당 앞을 지날 때마다 ‘쟤가 믿는 저 종교에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었지. 너의 기도 덕분인지 남편과 함께 세례를 받았단다. 같이 점심을 먹었던 친구 셋도 모두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벚꽃이 모두 지고 난 오월의 어느 날, 남편과 함께 하늘공원에 갔어. 올해부터 매일 미사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 따사한 햇빛이 묘지와 봉안당을 가득 채웠어. 성전으로 오르는 계단의 끝자락에 예수님께서 두 팔 벌려 반겨주셨구. 깊은 울림을 주는 신부님의 강론과 단아한 미사 해설 소리가 그날따라 참 편안하게 느껴지더라.

   미사를 마치고 묘지 주변을 천천히 걸어보았어. 매장묘와 고급스럽게 디자인한 가족묘, 성직자, 수도자묘도 있었어. 위령의 날 미사 때 느꼈던 감동이 되살아났지. 묘지 주변에 점점이 서서 고해성사를 드리는 모습,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도 주교님과 많은 신부님들과 봉사자와 신자들이 경건하게 미사를 드리는 모습, 귀에 쏙쏙 들어오는 주교님의 강론 말씀, 삼천여 명의 신자들이 성체를 함께 나누었던 일들, 레지오 단원들과 묘지 옆에서 얘기 나누며 맛있게 먹었던 점심 등 남편에게 재잘대듯 이야기했지.

   여기가 묘지 앞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느낌이 전혀 달랐어. 뭐랄까, 산 이와 죽은 이의 경계가 없는 것 같은? 엄마 품같이 따뜻하고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서 남편에게 얘기했어. 나는 죽으면 이 하늘공원에 묻히고 싶다고. 선산에 함께 묻히는 것이 늘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남편은 며칠 뒤 어려운 승낙을 했단다. 남편과 세례를 받고 성가정을 이루었으니 영원한 생명을 시작하는 이곳에서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어. 너가 믿는 종교를 믿고 싶다던 나의 첫 기도를 들어주신 주님께서 나의 마지막 바람도 이루어주시리라 믿어.

   친구야, 우리 하늘공원에서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햇살 따뜻한 하늘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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