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631호 2020.01.01 
글쓴이 최윤호 신부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


 

최윤호 신부 / 사직성당 보좌

 

얼굴. 우리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눕니다. 얼굴을 마주 보지 않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상대방과 친교를 나눌 의사가 없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냅니다. 또한 같은 말을 하더라도 문자나 전화로 이야기를 하는 것과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렇듯 우리의 관계에서 얼굴을 보고 말고의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얼굴을 본다는 것은 직접적인 친교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께서 친히 우리와 친교를 이루시고, 우리를 돌보겠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 6,24~25) 주님의 얼굴은 축복과 평화와 연관된다는 것이 여기서 나타납니다. 그럼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다른 일들 때문에 우리 삶은 평화롭지 못하고 축복도 없는 것 같은데, 주님께서 정녕 얼굴을 비추시는 것인가? 나를 바라보고 있기는 하신 것인가?”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괴롭고 비참한 처지에 있을 때, 아무도 나를 봐주고 있지 않는 것 같은 때에 우리를 더 귀하게 바라보십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께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 우리 삶의 어둠이 강하게 드리울수록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눈길을 더 많이 주십니다. 어둡고 추운 밤의 들녘에서 양들을 돌보던 가난한 목자들에게 주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누구보다도 먼저 비추어 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목자들에게 당신 얼굴을 드러내 보여주셨던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목자들이 전해준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곰곰이 되새겼습니다. 밤의 어둠 속에 있는 이들, 추위와 외로움, 온갖 어려움과 마주한 이들에게 주님께서 누구보다 먼저 당신 얼굴을 비추셨던 바로 그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되새겼습니다. 이런 마리아의 모습은 우리에게 하나의 모범으로 제시됩니다. 마리아께서는 하느님께서 세상에 오시어, 가장 어둡고 춥고 가난한 곳에 있는 이들에게 당신을 먼저 드러내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그로부터 희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목자들에게 전해진 주님 탄생의 소식은 우리에게도 희망의 등불입니다. 오늘날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 환자들, 의료진들, 그들의 가족들, 그 밖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얼굴은 가장 먼저 비추어질 것입니다.

 

몇몇 어른들께 듣기로 IMF나 지금까지 있었던 어떤 위기보다도 오늘날이 더 힘들다고 합니다. 이제껏 겪어본 적 없었던 차갑고 긴 밤을 보내며 새롭게 한 해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밤을 견딜 수 있는 것은 동이 틀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께서 그러하셨듯 주님께서 어렵고 어두운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신다는 사실을 마음에 간직합시다. 우리가 그 사실을 곰곰이 되새길 때마다 희망의 여명은 점점 밝아오고, 이 어두운 시간을 인류 공동체가 함께 견뎌낼 것입니다.

 

마리아께서 목자들을 마음속에 간직하셨던 것처럼 하느님께서 주시는 희망을 간직하며 새해를 맞이합시다. “이는 우리 하느님이 자비를 베푸심이라. 떠오르는 태양이 높은 데서 우리를 찾아오게 하시고, 어둠과 죽음의 그늘 밑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며,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시리라.”(루카 1,78~79)

호수 제목 글쓴이
2496호 2018.07.08  내가 너를 좀 아는데... file 최재현 신부 
2659호 2021.07.11  ‘회개하라고 선포하여라.’ file 최재현 신부 
2631호 2020.01.01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 file 최윤호 신부 
2292호 2014.09.21  역설의 삶 최요섭 신부 
2504호 2018.09.02  틀 속에 갇혀 버린 하느님 file 최요섭 신부 
2658호 2021.07.04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file 최요섭 신부 
2395호 2016.08.14  성모 승천 대축일 최승일 신부 
2574호 2019.12.22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file 최승일 신부 
2758호 2023. 5. 21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file 최승일 신부 
2088호 2011.01.23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최성철 신부 
2442호 2017.07.09  감사합니다 file 최성철 신부 
2605호 2020.07.12  열매 맺는 신앙 file 최성철 신부 
2787호 2023. 12. 10  기다리는 마음 자세와 태도 file 최성철 신부 
2299호 2014.11.09  거룩한 시간과 거룩한 장소 최성욱 신부 
2512호 2018.10.28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file 최성욱 신부 
2036호 2010.02.14  늘 깨어 지켜라 최득수 신부 
2186호 2012.11.04  사랑은 명사가 아닌 동사 최득수 신부 
2336호 2015.07.12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최득수 신부 
2026호 2009.12.17  행복한 신앙인인 성모님 최경용 신부 
2173호 2012.08.12  돈으로 살 수 없는 빵 최경용 신부 
색칠하며묵상하기
공동의집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