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강병규 야고보 신부 / 부산가톨릭의료원 원목
성경은 하느님과 인간의 거룩한 만남의 이야기를 수록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만남은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의해 시작됩니다. 부르심이 있었기에 인간의 응답이 있고 이 부르심과 응답을 통해 만남의 장이 열립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십니다.“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라는 부르심입니다. 이는 단순히 예수님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는 답할 수 없는 물음입니다. 지식만으로는 고백할 수 없는 물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기 위해서는, 복음이신 예수님을 나의 삶 안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림이 많습니다. 흔들림이 많기에 한없이 주님께 기대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흔들림이 많고 부족한 우리이기에 교회를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사랑으로 베풀어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죽음의 세력도 누르지 못할 튼튼한 하느님의 공동체가 됩니다.
또한 베드로에게 잠그고 푸는 열쇠를 맡기신 것은 지배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만인의 구원-을 실천하도록 하는 책임이 우리 교회에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마태 7, 21 참조) 따라서 우리는 제도나 법, 이론보다는 예수님을 먼저 떠올려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을 기초로 세워진 것이기 때문입니다.(1코린 3, 11 참조) 세상으로 나아가지도,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정체된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아가 예수님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어 그들을 안아 주고 치유해 주는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찾아야만 합니다. 편법과 술수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과 정의가 가득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실수가 많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지만, 그런 실수나 죄보다도 하느님의 은총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룩한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그런 교회의 모습을 되찾아간다면, 우리는 편 가르기나 적 만들기를 중단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 안에 역사하심을 감사하고 기뻐하는 찬양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