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힘겹습니다, 신자로서 살아간다는 건!
다대성당 주임 이성균 예로니모 신부
가정 경제를 꾸려나가기 위해 날마다 분투하면서 주일미사에도 빠지지 않아야 하고, 수입은 정해져 있고 돈 들어갈 일은 많은데 매달 교무금도 바쳐야 하고, 매주 헌금도 해야 하고, 각종 후원금도 내야하고, 신축이나 개축 헌금도 내야하고, 본당에 행사가 있으면 기부금도 내야하지요. 간간이 기원할 일이 있으면 미사 예물도 필요합니다.
아이들의 교육, 취직, 결혼, 온갖 뒷바라지와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기도 버거운데 본당 행사를 위해 밥을 짓거나 행사 준비에 분주해야 하고, 반 소공동체 모임에도 참석해야 하고, 레지오 단원이라면 주회에도 참석해야 하고, 신심단체에 속해 있다면 매달 모임에도 참석해야 하고, 각기 맡은 직분에 최선을 다해도 성과가 미미할 때는 속도 상해야 하지요.
그래도 그럴 수 있는 형편이면 낫습니다. 살면서 떠 안아야 할 고민은 또 왜 그리 많습니까? 모진 것이 목숨이라고 매일 밥을 우겨 넣기는 하지만 병들고 늙어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고, 보장되지 않은 미래는 막막한데 뾰족한 수가 없다고 생각되면 ‘즐겁게 잘 사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마음만 허물어질 일입니다. 남들은 안 그런 것 같은데 왜 나만 힘든 것인지…
내라는 것 내고 하라는 것 하고, 형편이 되는 대로 지킬 것 지켜가면서 기도도 열심히 하고 남에게 해 끼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마음 다독여가면서 큰 욕심 내지 않고 살려 합니다. 그러면 된 것 아닙니까?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구원받을 사람이 적다니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를 모르신다니요?'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으로 구원에서 제외되는 것을 망연히 보아야 하다니요?
구원 받을 사람들의 숫자에 관심이 많았던 유다인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대꾸도 않으십니다. 그저 ‘불의를 일삼지 말고 때늦은 후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저자의 말을 빌리면 심지 곧게 ‘바른길을 달려가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됩니다. 그리고 구원은 장담할 일이 아니라 희망할 일입니다. 용기를 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