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세례 축일

가톨릭부산 2015.10.07 05:46 조회 수 : 67

호수 1975호 2009.01.11 
글쓴이 방삼민 신부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갔을 때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을 보았다. 흰옷을 입고 강에 들어가 온 몸을 물 속에 푹 담그고 나와서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단지 물 속에 들어갔다 나왔을 뿐인데 그토록 기뻐하는 이유는 세례가 단지 물로 씻는 일만이 아니라 그 예식을 통하여 자신의 모든 죄를 씻고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는 것임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세례 때를 기억해 보자. 우리 교회에서는 온 몸을 물에 담그는 대신 이마만을 물로 씻지만 그 의미는 동일하다. 6개월간의 교리기간, 시간에 쫓겨 놓치기도 하고 피곤하여 졸리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세례’를 위한 일념으로 열심히 출석했던 그때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다시 태어나던 그 날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오늘은 주님이 세례 받으신 날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죄 없으신 주님이 왜 세례를 받으신 것일까? 예수님의 세례는 죄를 씻기 위한 의식이라기보다는 온 세상에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요,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이시라는 사실을 공적으로 인정받고 세상에 구세주로 오신 당신의 생명을 실천하는 공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예식인 셈이다.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하는 음성이 들린 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명과 신분을 천명하는 하늘의 증언인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그리고 일생을 하느님의 아들답게 사셨다. 그리하여 세례를 통하여 그 분의 생명에 참여하는 우리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을 부여받게 되었다. 세례 받던 날 그 깊은 뜻도 모르고 다소 흥분되고 얼떨떨한 마음으로 신자 생활을 시작하게 된 그 날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큰 은총의 순간이었던가!

지금 우리의 신자 생활은 어떤가? 죄를 씻고 새로 태어난 세례의 기쁨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온 몸을 담그지 않고 머리만 씻어서인지 생각 따로 몸 따로의 신자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일 퇴색된 거울처럼 세월이 갈수록 처음의 그 마음을 잊고 산다면 세례 때 받았던 새 생명의 은총도 그 힘을 잃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 주님의 세례 축일을 맞이하면서 요르단 강에 온 몸을 담그고 나와 서로 기뻐하며 얼싸안던 이름 모를 사람들의 얼굴과 세례 받던 날 이마에 물 붓고 촛불을 들고 서 있던 자신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호수 제목 글쓴이
1288호 2012.11.18  하느님의 사람 김상호 신부 
1963호 2008.11.02  화무십일홍 정승환 신부 
1964호 2008.11.09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이윤벽 신부 
1965호 2008.11.16  이자(利子)를 드리자 오창근 신부 
1966호 2008.11.23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는 사람 조동성 신부 
1967호 2008.11.30  어서 빨리 오소서, 주님!(MARANATHA!) 경훈모 신부 
1968호 2008.12.07  고독 속에서 외치는 우렁찬 소리 윤명기 신부 
1969호 2008.12.14  자선과 겸손 김성한 신부 
1970호 2008.12.21  동정녀 잉태 이민 신부 
1971호 2008.12.25  삶의 안내자 예수님 황철수 주교 
1972호 2008.12.28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손원모 신부 
1974호 2009.01.04  주님 공현 대축일 김정욱 신부 
1975호 2009.01.11  주님 세례 축일 방삼민 신부 
1976호 2009.01.18  와서 보아라! 이수락 신부 
1977호 2009.01.25  '삶의 자리'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 김효경 신부 
1978호 2009.02.01  진정한 권위 박만춘 신부 
1979호 2009.02.08  예수님의 선교 사명 박명제 신부 
1980호 2009.02.15  참된 치유 윤희동 신부 
1981호 2009.02.22  얘야,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마르 2, 6) 장세명 신부 
1982호 2009.03.01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우종선 신부 
색칠하며묵상하기
공동의집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