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

가톨릭부산 2015.10.07 05:13 조회 수 : 41 추천:2

호수 1963호 2008.11.02 
글쓴이 정승환 신부 

참 세월이 빠르다. 전례력으로 연중 마지막 시기인 11월이다. 위령 성월을 맞으며 여기 저기 떨어지는 낙엽을 본다. 낙엽은 우리네 삶을 닮았다. 눈부신 초록의 인생을 다하고 한줄기 바람에 제 몸을 기꺼이 내맡기는 낙엽. 그 사무치는 풍경 뒤에는 가야 할 때를 알고 생에 대한 집착을 깨끗이 버리는, 장엄한 자연의 이치가 있다. 낙엽은 이울어가는 가을의 마지막 선물이다. 가을은 떠나가고, 낙엽은 우리 빈 가슴에 소리 없이 떨어지고 있다.

교회는 위령의 날이 있는 11월을 위령 성월로 지내고 있다. 세상을 떠난 영혼들, 특히 연옥 영혼들을 위해 많은 기도를 바치기를 권하고 있다. 미구에 우리 자신도 떨어지는 낙엽처럼 이 세상을 떠나 주님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죽음과 영원한 천상 복락을 생각하며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지나간 삶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주인을 기다리는 행복한 종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계절이다.

오늘 위령의 날에 교회는 인생의 짐의 무게를 묵상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십자가가 있으며 그 멍에는 버겁게 느껴진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멍에가 편하고, 그 짐이 가볍다고 하시지만, 눈물의 골짜기에서 찬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네 여정은 그리 녹록하지가 않다. 그렇다고 마냥 피할 수 만은 없다. 피한다고 그 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과 정면 승부를 해야 하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 모두를 초대하신다.

주님 안에 쉬기까지 우리에게 참 안식과 행복은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강생과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사람들의 짐과 멍에를 대신 짊어지시고 그 무게를 덜어 주신다. 주님이야말로 우리를 치유해 주실 참 의사이시다. 그 분의 치료제를 받아들이자. 우리의 치료제는 그리스도의 은총이다. 우리의 상처에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시는 가없는 그 은총의 선물이 흐벅지게 쏟아지고 있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

만산이 홍엽으로 물들어 그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 위령의 달에 우리는 또한 쇠락하는 낙엽을 본다. 허망한 인생의 모습을 닮았다. 그 쇠락은 그러나 다가올 새 봄에 언 땅을 박차고 약동할 생명을 위한 기약이요 희망이기에 결코 덧없지도 허무하지도 않다. 그래서 낙엽은 생명이다. 우리 또한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의 말씀 안에서 나그네 지상 소풍을 희망을 품고 살아가야 하리라. 이제 더 이상 눈물도 울부짖음도 슬픔도 없는 영복소에 이르는 그날까지...

호수 제목 글쓴이
1288호 2012.11.18  하느님의 사람 김상호 신부 
1963호 2008.11.02  화무십일홍 정승환 신부 
1964호 2008.11.09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이윤벽 신부 
1965호 2008.11.16  이자(利子)를 드리자 오창근 신부 
1966호 2008.11.23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는 사람 조동성 신부 
1967호 2008.11.30  어서 빨리 오소서, 주님!(MARANATHA!) 경훈모 신부 
1968호 2008.12.07  고독 속에서 외치는 우렁찬 소리 윤명기 신부 
1969호 2008.12.14  자선과 겸손 김성한 신부 
1970호 2008.12.21  동정녀 잉태 이민 신부 
1971호 2008.12.25  삶의 안내자 예수님 황철수 주교 
1972호 2008.12.28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손원모 신부 
1974호 2009.01.04  주님 공현 대축일 김정욱 신부 
1975호 2009.01.11  주님 세례 축일 방삼민 신부 
1976호 2009.01.18  와서 보아라! 이수락 신부 
1977호 2009.01.25  '삶의 자리'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 김효경 신부 
1978호 2009.02.01  진정한 권위 박만춘 신부 
1979호 2009.02.08  예수님의 선교 사명 박명제 신부 
1980호 2009.02.15  참된 치유 윤희동 신부 
1981호 2009.02.22  얘야,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마르 2, 6) 장세명 신부 
1982호 2009.03.01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우종선 신부 
색칠하며묵상하기
공동의집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