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적 낙천

가톨릭부산 2015.10.13 07:49 조회 수 : 31

호수 2094호 2011.02.27 
글쓴이 종말론적 낙천 

종말론적 낙천


김상효 필립보 신부 / 화봉성당 주임

Nella Fantasia(넬라 판타지아)
우리가 잘 아는 영화 미션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입니다. Gabriel’s Oboe(가브리엘의 오보에) 로 알려진 이 곡은 아주 특별한 장면에서 사용됩니다. 남미의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과수 폭포를 기어 올라가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원주민들에게 포위된 가브리엘 신부가 아무런 동요도 없이 천천히 오보에를 조립하고 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연주를 합니다. 미지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고 있던 바로 그 상황에 너무도 태평스러운 음악이 연주되고 선교사와 원주민들의 첫 만남이 마무리 됩니다.

Sagrada Familia(사그라다 파밀리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지어지고 있는, ‘성가정성당’이라고 해석되는 성당 이름입니다. 1882년 3월 19일 성요셉 축일에 안토니오 가우디에 의해 설계되어 건축되기 시작한 성당입니다. 1926년 가우디가 세상을 떠난 이후는 물론이고 현재까지 완공되지 않은 성당입니다. 오로지 후원자들의 성금에 의존해서 짓는 이 성당은 언제 완공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부에 건축을 위한 비계들이 어지러이 널려있고 석회와 페인트 냄새가 진동하는 이 성당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관광객들은 시간을 잊어버린 이 건축물과 이 건축물을 짓는 사람들의 배포와 신앙에 경의를 표하곤 합니다.

인스턴트와 영원 사이 어디 쯤에 우리 삶이 끼어 있습니다. 누구는 인스턴트에 가까이, 또 누구는 영원에 가까이 존재합니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 무엇을 입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도 없고, 영원이 주는 끌림을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을 허덕이며 십 분 어치 의미, 한 시간 어치 목표, 한 달짜리 기쁨을 위해 나를 소진하면서도 가끔은 ‘이게 아닌데’를 외치는 내 속의 나를 다독거려야만 합니다. 신앙이란 느긋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주민들이 나를 에워싸고 목에 창을 들이밀어도 그저 지금의 오보에를 즐길 수 있는 느긋함, 내가 비록 그 성당의 완공이 주는 기쁨을 향유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저 지금 짓고 있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여유. 이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단기적 목표와 초단기적 성과에 목을 매야 하는 세상에서, 나노(nano)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논쟁들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을 향해 신앙인은 느긋함으로 하느님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나 아니면 내 뒷사람이, 내 뒷사람이 아니면 끝끝내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신다는 낙천으로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것이 얼마간 비이성적이라는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정머리 없는 합리성과 효율성이 얼마나 우리를 가혹하게 대하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영원이 하느님의 시간 단위라면 그것은 이미 합리성과 효율성 너머에 있다는 뜻입니다. 부디 영원이라는 시간 단위에 얼른 적응하게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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