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흔적

가톨릭부산 2018.04.04 09:38 조회 수 : 147

호수 2483호 2018.04.08 
글쓴이 박종주 신부 

사랑의 흔적

박종주 베드로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장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감명 깊게 읽은 책들이 한두 권 있을 겁니다. 저는 신학생 시절, 엔도 슈사쿠라는 일본 작가의 책으로부터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침묵』,『깊은 강』, 근래에는『마지막 순교자』라는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인간 존재의 나약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가의 글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그가 쓴『사해 부근에서』라는 소설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묻습니다.“로마보다도 오래오래 영원히 계속되는 게 무엇인가?”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그 사람들의 인생에 내가 닿은 흔적, 내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스치면서 남긴 흔적. 그것은 소멸되지 않는 것입니다.”이 소설에서 예수님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으신 분으로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박한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과 그저 함께하실 뿐, 그들을 어떻게도 치유시키시지 못합니다.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제자들마저 이런 예수님을 보고 돌아서 버립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무능한 예수님을 잊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그들의 슬픈 인생에 다가가 남기셨던‘사랑의 흔적’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토마스도‘흔적’을 요구합니다.“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그는 부활하신 예수님보다 예수님의 손과 발에 있는 못자국, 옆구리의 상처를 더 보고 싶어 합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예수님이 참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다는 것을 증명해 줄 수 있는‘흔적’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상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인생에 스친, 인류가 잊지 못할‘사랑의 흔적’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힘과 능력만을 기대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어느 순간 능력을 주지 못하시는 분처럼 주님이 체험될 때, 그 믿음은 이내 실망으로 바뀌고 맙니다. 엔도 슈사쿠가 그의 소설에서 주고자 하는 메시지도, 우리가‘주님의 능력’에만 믿음을 두기보다‘주님의 사랑’에 믿음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자비 주일인 오늘, 자비는 능력이 아닌 사랑임을 기억합시다. 우리 인생에 스치고 지나가신 그분의 사랑을 기억합시다. 그래서 우리도 누군가에게‘능력의 흔적’이 아니라‘사랑의 흔적’을 남겨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합시다.
호수 제목 글쓴이
2297호 2014/10/26  사랑, 그 이중성에 대하여 천경훈 신부 
2509호 2018.10.07  묵주 한 알 file 천경훈 신부 
1996호 2009.06.07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차성현 신부 
2113호 2011.07.10  내 안의 돌밭 차성현 신부 
2267호 2014.04.06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차성현 신부 
2468호 2017.12.31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가정 성화 주간) file 차성현 신부 
2007호 2009.08.16  나는 밥이 되고 싶습니다. 차공명 신부 
2131호 2011.10.30  신독(愼獨)의 수양(修養) 차공명 신부 
2485호 2018.04.22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 file 차공명 신부 
2647호 2021.04.18  살과 뼈 file 차공명 신부 
2266호 2014.03.30  태생 소경과 빛 주영돈 신부 
2627호 2020.12.13  대림은 자선과 회개의 삶 file 주영돈 신부 
2810호 2024. 4. 28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다 쳐 내신다. file 주영돈 신부 
2085호 2011.01.02  제44차 세계 평화의 날 교황 담화문(요약) 주보편집실 
2094호 2011.02.27  종말론적 낙천 종말론적 낙천 
2087호 2011.01.16  일상의 시간과 거룩한 시간 조욱종 신부 
2247호 2013.12.08  천사를 환대하지 않고 죄악을 퍼뜨리려 한다면! 조욱종 신부 
2178호 2012.09.09  에파타 조옥진 신부 
2329호 2015.05.24  성령 강림이 주는 의미 조옥진 신부 
2557호 2019.08.25  구원과 그리스도인의 삶(루카 13,22-30) file 조옥진 신부 
색칠하며묵상하기
공동의집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