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자리
김태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 이주노동자 사목
요한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인‘성전 정화’말씀을, 포도주가 다 떨어져 파장 분위기인 잔칫집에 예수님께서 물로써 좋은 포도주를 마련해주심으로써 새롭게 잔치를 이어갈 수 있게 하셨다는‘카나의 혼인 잔치’바로 뒷부분에 놓고서 복음 말씀을 풀어나갑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잔칫집의 모습, 그 한 예로 복음사가는 당시의 성전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집이라고 부르는 성전에서 하느님은 당신 자리에서 밀려나 있고, 율법과 제의규정에 따른 장사치들이 그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 13),“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9, 13) 등의 성경 말씀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성전에서 모두 쫓아버리십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의 잔치는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면 물이 포도주가 되는 복음 말씀처럼, 현실에서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채찍을 휘둘러서 과격하게 표현하실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시고 그 말씀을 몸으로 살아가시는데, 예수님을 신뢰하지 않는 인간들의 기준에는 예수님이 율법을 어기고 성전에서 난동을 부리며 신성모독을 하는 자로 보일 뿐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길과 인간의 길이 다르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시는 것이 인간의 길에 방해가 되면 인간들은 하느님도 죽일 수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것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이 사순 시기에 꼭 필요한 정화작업입니다.
어떻든 제자들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체험을 통해서야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 또한“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 인간에게 가능성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은 당신 몸인,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성전입니다. 웅장하고 화려하게 꾸며진 건축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자리, 그곳이 바로 성전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도 하느님의 성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께서 머무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일, 치열한 정화작업을 통해서 나 자신이 하느님을 모시는 성전으로 살아간다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풍성한 생명의 잔치가 새롭게 펼쳐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