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그 위대한 사랑의 씨앗!
김영훈 미카엘 신부 / 데레사여고 교목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한 주 앞둔 이번 주 복음 말씀은 죽음이 멀지 않은‘어린 양’의 고뇌를 다루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합니다. 즉, 하느님의 영광은 세상의 영광과 달리‘자기 살림’이 아니라‘자기 죽임’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고, 따라서 반드시 외아들의 십자가를 통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자기 죽임’은 자학이나 자폭이 아니라 진정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선택할 수 있는 달가운 멍에이고 아름다운 희생입니다.
교우 여러분,‘~때문에’와‘~를 위하여’의 차이를 아십니까? 우선‘~때문에’라고 말하는 사람은 의무감으로 짐을 지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가족부양 책임 때문에, 교회법이 정한 의무 때문에 성실함을 다하는 그들은 희생적인 삶을 살지만 결코 기쁘지 않습니다. 항상 남의 눈을 의식하고, 남을 탓하고, 남에게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또한 이런 유형의 사람은 성실히 책임을 다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것을 사랑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반면에‘~를 위하여’라고 말하는 사람은 비록 고달픈 삶이지만 그것을 오히려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하여, 사랑하는 동료들을 위하여 자신이 망가지고 병들고 무시당해도 그것을 이겨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의무감이 아닌 기쁜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이 전제되지 않은 십자가는 그저 고통의 멍에이거나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 24) 이 밀알의 비유는 십자가를 통한 하느님의 영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지면 땅속에서 껍질이 썩으면서 씨앗 속에 들어있던 생명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웁니다. 그리고 추수 때가 되면 하나에 마흔 개 정도의 밀알이 맺힌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음 해 마흔 개의 밀알이 땅에 뿌려지면 1,600개의 밀알이, 다음 해는 6만 4천 개, 또 그 다음 해에는 250만 개, 그 다음 해에는 1억 개 이상의 밀알을 내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밀알 하나에 천문학적인 밀알들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열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작은 희생과 수고가 하나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으면 그 밀알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어 나중에는 엄청난 수확을 얻게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십자가의 신비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풍년은 한 톨의 작은 씨앗에서 시작되니 그 씨앗의 자기 내던짐은 얼마나 값진 희생이고 수고로움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