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평신도 희년 새해 첫 주일, ‘주님 공현(公現) 대축일’을 맞이하여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의 가정에 가득하시길 빕니다.
오늘 복음이 전해주는 가장 큰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구세주만이 아니라 온 인류의 구세주이심을, 아기 예수 때부터 온 세상에 알렸다’는 점입니다. 구원이 나, 너, 우리, 만민에게 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다음과 같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하늘의 별‘만을 보고도 하느님의 구원을 알아들었는데, 수천 년 간 구세주를 기다려온 유대인들은 왜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은 매 순간 새롭게 우리 삶에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제대로 듣고 있을까요? 여러분의 삶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한 때는 언제입니까? 저의 하느님 체험을 통해 답을 찾고자 합니다.
1977년 중학교 시절, 저는 참으로 배고픈 소년이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먹을 것이 가득 쌓인 동네 구멍가게를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로 배를 채워야 했던 그 설움은 너무나 컸습니다. 배고픔을 도저히 참지 못해, 자존심 다 팽개치고 외상으로 라면을 가져다 끓여 먹어야 했습니다. 그것마저 두세 번 반복하기 미안해서 2~3일을 굶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10~11월 고구마 철이 되면 무척 기뻤습니다. 고구마밭 주인이 수확을 마친 후에 혹 빠뜨린 고구마를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호미로 땅을 파서 숨어 있던 고구마를 발견하고, 손에 높이 들었을 때의 기쁨이란!!!... 그때 그 고구마는 저에게 생명이었고 하느님이었습니다.
사제가 된 지금도 고구마를 생각하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괴테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는 사람은 인생의 참다운 의미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바꾸어 말하고 싶습니다. ‘눈물 젖은 고구마를 먹어보지 않고서는 하느님에 대해 참으로 알기 어렵다.’고 말입니다.
생애 단 한 번만이라도 ‘진리의 현존’을 목격하기를 소망했던 동방박사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동방의 별’을 통해 드러내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누구에게나 ‘별’은 있습니다. 사건이든, 만남이든, 그것을 통해 ‘하느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별의 모습’입니다. 저에게는 눈물 젖은 고구마가 동방의 별이었습니다.
주님, 제가 배고픔을 통해 영원히 목마르지(배고프지!) 않는 당신을 찾았듯이, 세상 모든 이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고통과 아픔을 통해 영원한 생명이자 행복자체 이신 당신을 찾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