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기다림은?
김윤태 루카 신부 / 부산가톨릭의료원 기획실장
오늘 독서는 우리 주님께‘하늘을 찢고 내려오시기를’청하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고, 그리고 언제 올지 모르는 집주인을 깨어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고 기다리고 있습니까? 자신의 삶의 목표가 정해진 대로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는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바로 예언자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가 바로 요한”(마태 11,7∼9 참조)이라고 들려주시며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을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왕궁의 삶이 아니라 예언자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서의 말씀처럼 개짐에 지나지 않는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살아가는 삶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부하십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리고 모른다고 하면 나도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고, 무엇을 목표로 하고 살아가는지 명확히 표현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보통 우리는 좋고 선한 것을 기다리고 고대하지만 싫은 것 악한 것들은 그냥 지나가기를 고대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지나감이 아니라 기다림이 많은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지나가는 것은 기다림을 이루기 위해서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통과가 아니라 기다림의 연속이어야 합니다. 이 기다림에 나의 가족, 이웃, 나의 죽음, 주님과의 만남 등들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이런 기다림들이 나의 인생이 됩니다.
그리고 이때 기다림의 지표는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최후의 심판입니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이렇게 사랑은 하느님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명령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기준입니다.
지금 2017년의 대림과 성탄은 나에게‘기다림’입니까? 아니면 그냥‘지나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