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행할 자유

가톨릭부산 2017.11.15 11:19 조회 수 : 185

호수 2461호 2017.11.19 
글쓴이 홍경완 신부 

감행할 자유

홍경완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장

  탈렌트라면 엄청난 액수다.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이고, 그 육천 배, 6000 데나리온이 한 탈렌트이니, 그 큰돈을 굴리려면 대단한 용기와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안전만을 생각한다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두는 편이 훨씬 낫다. 잘못 투자해서 쪽박 차면 책임은커녕 감당조차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상 종은 자신에게 맡겨진 재산을 그렇게 활용하지 않아도 된다. 주인은 별다른 지시 없이 그냥 재산만 맡겼기에, 그저 시키는 대로 맡아놓기만 하면 충분하다. 그게 종에게 더 맞는 역할이다. 이렇게 보면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이 더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다. 더 종답다. 그런데도 주인은 그 셋째 종을 야단치고 있다. 왜 그럴까? 거꾸로 물어보자. 더 많이 받은 두 종은 어떻게 경제활동의 모험이 그들에겐 가능했을까? 어디서 용기와 자신감을 얻어 주인의 재산을 굴릴 수 있었을까? 더 많은 탈렌트가 더 두렵게 할 텐데도 그들은 돈을 굴리는 모험을 감행한다. 한 탈렌트를 가진 셋째 종이 ‘주인이 두려워서’ 숨겨두었다는 쭈뼛쭈뼛한 고백과는 극심한 대조를 이룬다.
  복음은 이 비유가 하늘나라를 보여준다고 말하고 있다. 하느님의 다스림, 하느님의 통치가 하늘나라이다. 그 모습이 어떠한지를 앞의 두 종의 자세가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여느 종이 보이는 주인과의 거리감이 없다. 그들 스스로 주인으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고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재산을 굴릴 용기는 바로 이런 사랑받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생긴다. 주인의 거금을 경영할 수 있는 배짱은 내가 주인의 친구요 파트너로 받아들여진다는 확신 위에서 생긴다.종이라 생각하면 그게 불가능하다. 맘대로 재산을 못 굴린다. 주인은 여기에 걸맞게 한 탈렌트를 뺏어 두 종에게 나눠줌으로써 그들을 이제 동반자요 파트너라 선언하고 있다. 하느님의 통치, 하늘나라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이제 나에게 던지는 질문: 주인인 하느님이 내게 맡겨놓은 탈렌트는 얼마일까? 하나? 둘? 다섯? 태어나면서부터 숫자가 결정되지는 않았다. 내 맘 먹기에 따라, 내 처신에 따라 그 숫자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에 그렇다. 하기 나름이다. 숨겨놓기에 급급하다면 그 탈렌트는 필시 하나일 것이고, 사랑받는 자의 용기와 자신감으로 모험을 감행하다면 최소한 둘 이상이리라. 주인은 이제 나를 친구라 부르며, 더 이상 종이 아니라 동반자로 선언하고 있다. 사랑받는 자만이 감행할 자유를 누린다.
호수 제목 글쓴이
2804호 2024. 3. 17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 file 김명선 신부 
2803호 2024. 3. 10  구원은 하느님의 선물 file 심원택 신부 
2802호 2024. 3. 3  “성전을 허물어라.” file 김경욱 신부 
2801호 2024. 2. 25  세례받은 자, 본래의 모습으로 file 이성주 신부 
2800호 2024. 2. 18  광야와 인생 file 김무웅 신부 
2799호 2024. 2. 11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file 박명제 신부 
2798호 2024. 2. 10  주인이 종의 시중을 드는 이유 이장환 신부 
2797호 2024. 2. 4  사실 나는 복음을 선포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file 이장환 신부 
2796호 2024. 1. 28.  사랑의 권위 file 백성환 신부 
2795호 2024. 1. 21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file 박경빈 신부 
2794호 2024. 1. 14  “와서 보아라.” file 우종선 신부 
2793호 2024. 1. 7  잠 못 이루는 예루살렘 file 장세명 신부 
2792호 2024. 1. 1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이수락 신부 
2791호 2023. 12. 31  아름다운 가정 file 이수락 신부 
2790호 2023. 12. 25  가장 외로운 때에 가장 어둡고 힘든 그곳에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신호철 주교 
2789호 2023. 12. 24  두려움을 극복할 힘을 주님에게서 찾습니다. file 김정욱 신부 
2788호 2023. 12. 17  당신은 누구십니까? file 오창근 신부 
2787호 2023. 12. 10  기다리는 마음 자세와 태도 file 최성철 신부 
2786호 2023. 12. 3  대림 - 기다림과 희망 file 손원모 신부 
2785호 2023. 11. 26  우리들의 통치자 file 이민 신부 
색칠하며묵상하기
공동의집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