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태오 복음사가가 전하는 열 처녀의 비유는 구원과 심판의 그날이 언제일지 모르니 깨어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하지만 이 비유에는 몇 가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 되는 장면이 들어 있지요.
먼저 신랑을 맞을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 결국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다섯 처녀들이 상식 밖의 모습을 보이지요. 하필이면 신랑이 밤에 올 게 뭐랍니까. 낮에 왔으면 등불을 켤 기름은 필요도 없었을 것을. 그래도 기름만 준비했더라면 괜찮았을 텐데요.
또한 신랑을 만난 다섯 처녀들도 그래요. 기름을 나눠 쓰면 될 것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자기들만 들어가지요. 게다가 신랑은 늦게라도 기름을 마련해온 처녀들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래서 결국 문은 굳게 닫히고 맙니다. 하지만 여기가 끝은 아닙니다.
복음의 말씀은 지극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요. 혼인 잔치는 곧 구원의 잔치입니다. 그리고 기름만 준비한다면 구원될 것이라며, 구원받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님을 말하지요.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 해야 할 일이지 다른 이가 대신해줄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런 기름을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구할까요?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다른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이 잔치에서 쫓겨난다고 하였지요.(마태 22,12 참조) 결국 잔치 예복이나 기름은 같은 것이지요.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대로“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1테살 4,14) 바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며, 구원의 희망인 것이지요.
지혜는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그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고할 필요도 없이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고 합니다.(지혜 6,12∼14 참조)
그만큼 구원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또한 우리는 이미 구원의 문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는 것을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은 깨어 기다리는 믿음이 없이는 쉽게 들어갈 수 없는‘좁은 문’인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