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는 파견되면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중 가장 우선적인 일은 복음선포일 것이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 17)“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마태 10, 8)
그러나 이러한 복음선포는 그냥 쉽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박해를 각오해야만 했었다.(마태 10, 16∼25 참조) 그리고 박해가 있다고 해서 위축되어서도 안 된다. 오히려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심지어는 순교까지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오늘 복음의 내용이다. 박해와 순교도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다.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선포할 때는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겁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박해가 있거나 순교를 해야 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박해와 순교의 상황을 찾아다닐 순 없다. 그래서 강조하는 것이 정신적인 영역인 것 같다. 바로 순교의 정신이다. 박해의 상황은 아니고 그렇지만 성경에는 이야기되고 있으니 그 정신만큼은 지니고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아닌데 상황과 다른 정신을 계속 지속시킨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오늘날 복음선포에 있어서 힘든 것은 복음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물론 복음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알아야 만이 잘 선포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전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좀 무언가 분명하게 손에 잡히지 않으니 전하다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첫째로 복음의 내용이 너무 포괄적으로 이야기 되고 있다. 이런 것도 복음이요 저런 것도 복음이니 그냥 일반적인 윤리의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 성당에 나오는 것이 좋다는 식의 선포는 이제 별로 매력이 없다. 좀 더 범위를 좁혀서 손에 잡힐 수 있도록 분명했으면 한다. 둘째로 시대가 변한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하늘 나라’하면 사람들이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사람들의 요구에 다 장단을 맞출 수 없지만 그래도 시대가 변한 것은 사실이니 복음의 내용도 그 설명하는 방식이 좀 바뀌었으면 한다. 셋째로 복음선포가 너무 통계적이고 양적인 면에 치우쳐 있다. 물론 복음이 선포된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야 없을 수 없겠지만 여기에만 치우쳐 있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무엇을 전해야 만이 현대인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 즉 복음이 될 수 있는지를 좀 더 고민하는 것이 좋겠다.
오늘날에는 박해와 순교가 있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모르는 방향 상실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두려움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