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악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을 동원해서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빵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양식이고 배고픈 이가 빵을 먹는 것은 당연한 권리처럼 여겨집니다. 모세의 인도를 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배고플 때 하느님을 원망했지만,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고 당연히 해도 될 것 같은 일 앞에서도 먼저 하느님의 뜻을 찾습니다. 첫 번째 장면은, 나쁜 일이 아니고 합리적이고 어쩌면 당연한 권리처럼 여겨지는 일을 통해서도 악마는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유혹의 기술은 너무 평범하고 노골적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주일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내가,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준다 해서 악마에게 경배하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등장인물이 악마가 아니고 얻는 것도 그렇게 엄청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겠습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혹은 불이익을 피하고자, 거짓과 탐욕, 불의와 횡포에 고개를 숙인다면...... 이것들이 모이고 쌓여서 의인을 폭행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약탈합니다. ‘하느님도 이해해 주실 거야.’ ‘하느님 이번 한 번만요.’ 예수님께 모든 권세와 영광을 걸었음에도 실패한 악마가 우리에게는 보다 다양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다시금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을 실패한 악마가 세 번째로 선택한 방법은 왠지 최상의 무기인 것 같습니다. 윈윈 전략으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너의 이름을 드높이고 하느님께도 영광을 드려라!”는 것입니다. ‘이건 하느님을 열심히 섬겨온 저에게도 좋고 하느님께도 좋은 일이잖아요!’ 이런 허영심이 피어오를 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아버지께 가장 큰 영광을 드리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 장면을 묵상하면서 다섯 가지의 이유와 열 가지의 유익함을 내세워 하나이신 그분의 뜻을 애써 외면하려 했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유혹의 기술을 물리치는 가장 큰 힘은 내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찾는 단순한 일임을 고백하며 예수님께 위로와 도움을 청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