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르면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며 올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나의 모습을,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하나의 ‘끝’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하여 주기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라는 것은 전체 전례력을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내고 있는 축일이 지칭하고 있는 ‘왕’이라는 칭호는 무엇보다도 예수님 생애의 처음과 끝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당신 생애의 처음에는 ‘유다의 왕’을 찾는 이들을 별이 구유로 인도해 주었었고, 당신 생애의 마지막에는 욕설로 십자가 위에 적혀 있었습니다. 구유에서 십자가까지 왕으로서는 별난 경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힘 있는 자들의 편에 가담하셨더라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분은 아웃사이더들과 주변을 기웃거리는 이들의 편에 섰기 때문에 돌아가셔야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지내고 있는 축일의 그 왕입니다. 우리가 이 왕을 따르려면 잘못된 왕의 환상으로부터 탈피해야 합니다.
결국 예수님은 부와 명예가 아닌 가장 연약하고 비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진정한 왕으로 세상에 우뚝 서신 이유는 사랑의 완전한 실천가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은 한마디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 가르치시는 모든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과 용서와 평화 그리고 겸손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의 왕직을 받았습니다.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왕의 모범을 따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왕직은 한마디로 봉사직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그러한 삶을 사셨고 제자들에게 하신 가르침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실로 왕으로 섬긴다면, 우리는 예수님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것을 함께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 사랑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시면서 마침내는 제자들의 발까지 씻겨주는 가장 겸손한 왕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베풀고 용서하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왕직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가장 낮은 곳에서 겸손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가장 높은 곳에서 영광을 받는 이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