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긴 시간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힙니다. 그리고 아는 것이 많을수록 먹고 살아가는 데 유리합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양적인 차이를 비교한다면,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특히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 중, 중요한 한 가지는 ‘나의 마지막 날이 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르 13,35)라는 주님의 말씀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날이 언제인지를 모른다면, 영혼 구원을 위한 노력과 회개는 어느 것보다 선행되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면서 회개를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이르셨습니다. 이 준비 과정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영혼 구원의 긴박감이 느껴집니다. 같은 내용의 루카 복음 병행구절을 보면,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루카 10,4)는 말씀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빵을 준비하고 돈을 마련하고 여행 보따리를 꾸리기 위해 지체하지 말고, 아는 사람과 인사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이는 회개가 필요한 사람에게 곧장 가야 한다는 것이며, 잠시 지체한 것으로 인해 회개하지 못하고 마지막 날을 맞이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다급함으로 다가옵니다.
또한 제1독서에서 아모스는 ‘예언자도 예언자의 제자도 아닌,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나를 주님이 붙잡으셨고, 가서 예언하라고 하셨다.’(아모 7,14~15 참조)고 합니다. 예언자도 예언자의 제자도 아닌 평범한 농부를 부르시어 회개를 선포하도록 하신 것은, 신분과 능력의 많고 적음을 떠나 모두가 회개 선포의 주체이며, 그만큼 회개가 촉박하고 긴급한 과제임을 알려주십니다.
나의 마지막 날은 아무도 모르니, 영혼 구원을 위한 노력과 회개는 지금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를 선포하는 주체는 바로 ‘나’이며, 동시에 회개의 대상 또한 ‘나’입니다. 주님 말씀이 나를 통해 주변에 전해지고, 나 또한 회개로써 주님 앞에 기쁘게 설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