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440호 2017.06.25 
글쓴이 우리농 본부 

말이 안 되는 것이 말이 되는 세상
 

우리농 본부(051-464-8495) / woori-pusan@hanmail.net
 

  지독한 가뭄입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물을 대지 못해 모내기도 못 할 지경이라는 소식조차 들립니다. 그나마 논에 벼를 심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더라도, 밭에서는 어느 작물이고 죽음이 목전에 다가온 듯 바짝 말라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가뭄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그저 더운 초여름,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짜증 난 이상기후 정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가슴속까지 타들어 가는 절박한 생의 고비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가 바로 그 또 다른 누군가입니다. 이건 비가 오면 짚신장수 아들을 걱정하고, 날이 맑으면 우산장수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우화와 같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3년 당신의 첫 교황 권고인『복음의 기쁨』53항에서“나이든 노숙자가 길에서 얼어 죽은 것은 기사화되지 않으면서, 주가 지수가 조금만 내려가도 기사화되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라고 하셨습니다. 교황님은 어떻게 이것이 말이 되냐고 물으시지만, 우리는 그런 어이없는 일이 당연한 현실이 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가난한 농민의 타들어 가는 심정이 나의 불쾌지수보다 못한 세상은 그렇게 오늘도 굴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성을 차지하고서라도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어 폭동을 일으키는 군중을 향해‘빵이 없다면 케이크를 주라’고 했던 말을 되풀이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쌀이 없다면, 채소가 없다면 그냥 고기를, 빵을, 햄버거로 대신하면 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기근(飢饉)이라는 한자말이 있습니다. 여기서‘기(飢)’는 곡식이 여물지 않아 생기는 굶주림을 뜻하고,‘근(饉)’은 채소가 자라지 않아 생기는 굶주림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린 곡식과 채소 없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은 농민 없이 살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세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편안하게 살 것이 아니라 농민이 잘살 수 있는, 말이 되는 세상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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