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무것도

가톨릭부산 2017.05.24 10:24 조회 수 : 51

호수 2436호 2017.05.28 
글쓴이 우리농 본부 

아무도, 아무것도

 

우리농 본부(051-464-8495) / woori-pusan@hanmail.net

 

  모내기 철입니다. 온 들녘에 트랙터와 경운기 소리에, 농민의 땀방울이 가득합니다. 오래전 시작된 봄기운에 시골은 이미 기지개를 켰지만, 어쩌면 지금이 한창이라고 하겠습니다. 논에는 이미 물을 대고‘논 삶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렇게 써레질로 물에 조금씩 뭉그러진 흙을 잘게 부수고, 가래질로 논바닥을 평평하게 했습니다. 논을 삶던 와중에 탁해진 논물은 이삼일이면 맑아지고, 그즈음에 못자리에서 자라던 모를 가져와 모내기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천지에 가득한 생명의 기운을 만끽하다 보면 우리가 좀 더 윤리적으로 착하고, 그래서 사회적으로 말썽을 부리지 않아 적당히 통제와 예측이 가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법 없이도 살 만큼 순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주님이“저희를 통하여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집회 36, 4)내려고 파견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거룩함은 윤리적 선도,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 과학적 사실과 합리성도 넘어섭니다.


  정채봉 프란치스코라는 시인의‘들녘’이라는 시가 있습니다.“냉이 한 포기까지 들어찰 것은 다 들어찼구나. / 네잎클로버 한 이파리를 발견했으나 차마 못 따겠구나 / 지금 이 들녘에서 풀잎 하나라도 축을 낸다면 / 들의 수평이 기울어질 것이므로.”


  기술적 사고에 사로잡혀 선택과 집중으로 생명의 망에서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것을 배제하는 것은, 우리 주님이 그렇게도 하지 말라고 했던“가라지들을 거두어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마태 13, 29)는 것과 같습니다. 깨끗하게, 깔끔하게, 완벽하게 정리정돈해서 잡초 하나 없이, 오직 한 가지 작물만 온 들녘에 넘실거리는 모습은 하느님에 대한 모독이며 생명에 대한 폭력입니다. 아무도, 아무것도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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