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과공지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51차 홍보 주일 담화

(2017년 5월 28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이사 43,5) 
우리 시대에 희망과 믿음을 전하기

 

기술의 진보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 매체에 접근하여 소식을 신속히 공유하고 널리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 소식은 기쁜 것일 수도 나쁜 것일 수도 있고, 진짜일 수도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마음을 끊임없이 작동하는 맷돌에 비유하였습니다. 알곡을 갈아 낼지 쓸모없는 쭉정이를 갈아 낼지는 맷돌장이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늘 갈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어떤 양식을 줄 것인가는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성 요한 카시아누스, 「레온시우스에게 보낸 편지」 참조).   

저는 이 담화를 직장이나 개인적 관계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이들에게 풍성한 양식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맷돌처럼 날마다 정보를 갈아 내는 모든 이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모든 이가 건설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할 것을 권유합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양식은 우리가 다른 이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만남의 문화를 증진하며 확신을 지니고 현실을 바라보도록 도와줍니다.

전쟁, 테러리즘, 추문, 온갖 인간적 실패와 같은 나쁜 소식에 끊임없이 초점을 맞추어 비롯된 걱정의 악순환을 끊고 두려움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것을 막아 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이것은 인간 고통의 비극을 무시하는 오보를 퍼뜨리는 것도 아니고, 사악한 추문에 눈감아 버리는 순진한 낙관주의에 대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우리가 모두 커져가는 불만족과 체념의 감정을 극복하려고 애쓸 것을 제안합니다. 이러한 감정은 때때로 무관심이나 두려움, 또는 악은 무한하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게다가, 기쁜 소식은 팔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인간 고통의 비극과 악행을 쉽게 오락거리로 변화시키는 커뮤니케이션 산업에는 늘 우리의 양심을 무뎌지게 하거나 비관주의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유혹이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커뮤니케이션 양식을 찾는 데에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양식은 결코 악에 현혹되지 않고 그 대신 수용자의 편에서 문제 해결에 집중하며 긍정적이고 책임감 있는 접근법을 촉진하고자 애씁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기쁜 소식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제공해 줄 것을 모든 이에게 요청합니다.

 

기쁜 소식

 

인간의 삶은 단지 사건들의 연대기적 나열이 아니라, 가장 연관성 있는 자료들을 선정하고 모을 수 있는 해석의 렌즈를 선택하여 전해지기를 기다리는 역사이고 이야기입니다. 현실은 그 자체로 명확한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과 그들을 바라보는 데 사용하는 렌즈에 달려 있습니다. 렌즈를 바꾼다면 현실 자체가 다르게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올바른 렌즈를 통하여 현실을 읽기 시작할 수 있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탁월한 기쁜 소식, 곧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마르 1,1)으로 시작하는 기쁜 소식만이 올바른 렌즈가 될 수 있습니다. 마르코 성인은 이처럼 예수님에 관한 기쁜 소식이 아니라 예수님 자체가 바로 기쁜 소식이라는 것을 알리면서 그 복음을 시작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마르코 복음의 각 장들을 읽으면서 각 제목들이 내용과 부합하고, 무엇보다 그 내용이 바로 예수님 자체임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 자체, 곧 이 기쁜 소식은 고통을 없애 주기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고통이 좀 더 큰 그림의 일부, 하느님 아버지와 온 인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체험되기 때문에 기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인간의 상황에 연대하여 주시며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결코 당신 자녀들을 잊지 않으시는 하느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이사 43,5). 이 말씀은 당신 백성의 역사에 깊이 참여하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사랑하시는 당신 아드님을 통해 “내가 너와 함께 있다.”고 하신 하느님의 약속은 우리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모든 나약함을 감싸 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심지어 어둠과 죽음도 빛과 생명을 만나는 지점이 됩니다.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희망은 삶이 실패의 쓰라림을 마주하는 바로 그 교차로에서 탄생합니다. 이러한 희망은 실망을 주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고(로마 5,5 참조), 그 사랑은 땅에 뿌려진 씨앗에서 새싹이 솟아나듯이 새로운 생명을 꽃피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빛에 비추어 보면 이 세상의 역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새로운 비극도 기쁜 소식을 위한 배경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가까이 다가가며 연민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다시 새롭게 일어서려는 결의 찬 얼굴과 손길에 힘을 북돋울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씨앗에 대한 확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복음적 사고방식을 전하시고, 죽고서야 부활하는 사랑의 법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올바른 렌즈를 주시고자 비유를 이용하십니다. 그분께서는 흔히 하느님 나라를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그 능력을 드러내는 씨앗에 비유하십니다(마르 4,1-34 참조). 하느님 나라의 조용한 권능을 전하기 위해 사용된 이러한 이미지와 은유는 그 권능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손상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는 청중이 그 권능을 자유롭고 적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는 자비로운 방법입니다. 또한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의 역설적 아름다움을 전하는 파스카 신비의 무한한 존엄을 관념이 아닌 이미지로 표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입니다. 그 생명 안에서 고난과 십자가는 장애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나약함은 다른 어떤 인간의 힘보다 강하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실패는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을 완성하는 전주곡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이 자라나고 깊어집니다.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마르 4,26-27)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쉽게 보아 넘겨버리지만 조용히 뿌리내리는 한 알의 씨앗처럼 이미 우리 가운데 현존합니다. 성령께서 예리한 시각을 부여하신 사람들은 그 씨앗이 꽃을 피우는 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도처에 자라나는 잡초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성령의 지평

 

예수님 자체인 기쁜 소식에 기초한 우리의 희망은 주님 승천의 전례 거행 때에 우리가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주님께서 지금은 더 멀리 계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희망의 지평은 오히려 더욱더 넓어집니다. 우리 인간의 본성을 하늘로 들어 올리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간은 이제 자유롭게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에 들어갑니다. 그분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곧 당신의 몸을 통하여 그리해 주셨습니다(히브 10,19-20 참조). 우리는 “성령의 힘을 받아” “땅끝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구원된 인류의 “증인”이자 전달자가 될 수 있습니다(사도 1,7-8).

또한, 하느님 나라의 씨앗과 부활의 신비에 대한 확신으로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형성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확신은, 우리가 모든 이야기와 각 개인의 얼굴 안에 담겨 있는 기쁜 소식을 알아보고 밝게 비출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날 이루어지는 각양각색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우리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합니다.

신앙 안에서 성령의 이끄심에 자신을 의탁하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우리 삶과 역사의 매 순간마다 어떻게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며, 인내로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지 깨닫게 됩니다. 희망은 이 거룩한 역사를 엮어내는 실이며, 바느질을 하시는 분은 바로 위로자이신 성령이십니다. 희망은 덕목들 가운데 가장 겸손한 덕입니다. 희망은 삶의 굽이굽이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희망은 모든 반죽을 부풀게 하는 누룩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상징인 성인들의 생애 안에 수없이 많은 형태로 다시 쓰여진 복음을 새롭게 읽음으로써 희망을 키웁니다. 우리 시대의 극적인 사건들 가운데서도 기쁜 소식에 감도되어 이 세상의 어둠 속에서 횃불처럼 빛나고 나아갈 길을 밝히며 확신과 희망의 새로운 길을 여는 사람들의 도움에 힘입어, 오늘날에도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하느님 나라를 향한 갈망의 씨앗을 뿌려주십니다.


바티칸에서
2017년 1월 24일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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