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구장 강론

겸손의 삶

다해 연중 22주일 강론

(2019.9.1.,10:30, 염포 성당)

찬미예수님!

존경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열심히 사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난 주 우리는 복음말씀을 통해서 좁은 문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서두르라는 경고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그 대답으로 겸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이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선 오늘 복음을 봅시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 어느 지도자 집에 식사 초대받아 가셨을 때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식사자리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사회적.경제적 수준이 집주인과 비슷한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언젠가 집주인을 초대해 보답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모습을 유심히 보시니 초대받은 사람들은 서로 누가 높은 자리에 앉을지를 고민하면서 윗자리를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강한 충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동시에 식사를 초대한 집주인인 바리사이파 지도자에게도 충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손님을 초대할 때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되는 친구나 부유한 사람을 초대하지 마라. 오히려 가난한 이들,장애인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은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시면서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그렇게 해야 하느님의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삶의 자세 곧 겸손입니다. 당연히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이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것이라는 우리가 아는 일상적인 의미보다 더 깊은 종교적이고 영성적인 가르침일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오스딩 성인은 겸손한 이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timor Domini) 은사를 지닌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지혜의 시작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경외하는 것)입니다.”라는 지혜서(1,14)의 말씀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우리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나약한지를 아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의미의 겸손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겸손을 뜻하는 라틴어 humilitas이라는 뜻의 humus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원상으로 겸손이라는 이 말이 땅에 가깝기에 비천하다(가장 낮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죠. 또 라틴어 어원으로 볼 때, ‘’(humus)이라는 단어와 사람’(homo)이라는 단어는 어원이 같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재의 수요일에 재를 이마에 바르면서 사람아,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라는 말씀은 사람은 하느님께서 흙에서 빚어 만든 존재이기에 하느님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교만은 반대의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창조주 하느님의 존재를 망각하고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거망동의 표현이 교만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자기를 스스로 높이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기에 이웃의 존재가치를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겠지요.

 

우리가 너무나 잘 알다시피 예수님은 참으로 겸손하신 분이셨습니다. 필리비서 26절에서 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예수님은 마구간의 가난한 아기의 겸손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고, 사람들과 함께 사시는 동안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오직 아버지 하느님 중심의 생각과 말씀과 행위로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시기 위해 애쓰셨고, 마지막 죽으심도 아버지 하느님의 뜻대로의 겸손하게 순명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참으로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겸손하심은 온전히 아버지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식사에 초대받은 종교지도자들에게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는 강한 충고의 말씀은 그들의 삶이 하느님 중심의 삶이 아닌 율법으로 포장된 자기 권력과 명예, 재력 그리고 학식 등 세속적 가치를 기준으로 한 자기중심의 교만한 삶의 방식과 태도임을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높이는 교만한 삶의 자세로는 세상의 혼인 잔치에도 자칫 홀대받을 수 있지만,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잔치에는 결코 초대조차 받을 수 없음을 경고하십니다.

 

오늘 제1독서도 교만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 “거만한 자의 재난에는 약이 없으니 악의 자보가 그 안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거만한 자 곧 교만한 자의 재난에는 약도 없을 정도로 교만은 심각하다는 말씀입니다.

 

2독서인 히브리서 말씀은 겸손에 대해서 직접 언급은 없습니다만 겸손된 삶의 근거를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히브리서는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이전 모습,이전 종교로 되돌아갈 유혹을 받고 있는 유대인 신자들을 위해 써 보낸 서간입니다. 오늘 히브리서의 내용은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하느님 나라의 삶을 목표로 현실의 유혹을 극복하기를 바라면서 하신 말씀입니다.“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직 현실만 바라보는 자기중심적인 삶이 아니라, 가끔은 혹은 자주 우리 삶의 최종 목표인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살 때 현실의 유혹을 이겨내는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겸손의 삶은 이런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기초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날씨를 보니 정말 가을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가을 풍경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황금색으로 변한 논밭에 익은 벼입니다. 봄에 벼농사를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파종하기 전 좋은 볍씨를 고르는 일이고, 싹을 잘 틔울 수 있는 좋은 볍씨와 쓸모없는 볍씨의 분별 방법은 볍씨를 소금물에 담그는 일이라고 합니다. 싹을 틔울 수 있는 좋은 볍씨는 아래로 가라앉고, 반면에 쓸모없는 쭉정이 볍씨는 위로 뜬다고 해요. 말하자면 자기를 낮추는 볍씨가 좋은 볍씨인 셈입니다. 농부는 가라앉은 좋은 볍씨를 골라 모판에 뿌려 키우게 됩니다. 벼가 익을 때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잘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이고, 익지 않은 쭉정이는 오히려 고개를 바짝 쳐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벼를 통해 본 자연법칙도 우리에게 겸손한 모습과 겸손하지 못한 교만한 모습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지 싶습니다.

 

존경하는 교우 여러분! 결실의 계절인 가을에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에게 겸손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가을에 우리 자신의 겸손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의 현실 삶의 결실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신앙인으로서 인생의 참된 결실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는지? 그래서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나 자신의 삶의 태도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겸손의 모습인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안에, 여러분과 함께 계시면서 여러분이 겸손의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받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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