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444호 2017.07.23 
글쓴이 염철호 신부 

개신교에서는 하느님의 이름이 여호와라고 그러고 가톨릭은 야훼라고 그러는데 왜 그런가요?'
 

염철호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jubo@catb.kr
 

  구약성경의 히브리어는 본래 자음만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커피’를 표기할 때‘ㅋㅍ’라고만 표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읽기가 많이 불편할 것 같지만 익숙해지면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 전체가 이런 식으로 적혀 있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후손들이 점점 읽어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기원후 7∼8세기경부터 읽기에 도움을 주기 위해 모음을 만들어 붙이기 시작했는데, 이때 주님의 이름이 나오는 대목에 어떤 모음을 붙여할 지 문제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인들은 성경을 읽을 때 주님의 이름이 나오면 주님의 이름을 발음하지 않기 위해 그냥‘하셈’(그 이름) 혹은‘아도나이’(나의 주님)라고 읽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계명 때문인데, 오늘날 가톨릭교회도 성경에서 주님의 이름이 나오는 대목은“주님”이라고 진한 고딕체로 표기합니다. 히브리인들도 주님의 이름에‘아도나이’의 모음을 붙이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생겨난 표기가 YeHoWaH입니다(이것은 히브리어 모음규칙이 적용된 표기입니다). 이 점을 알지 못하던 후대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주님의 이름을 표기된 그대로‘여호와’라고 읽었습니다. 하지만 성서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주님의 이름이‘야훼’였을 것으로 추정하게 되었고, 오늘날 성서학자들은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대부분 이를 정설로 받아들입니다. 주님의 이름인‘야훼’의 축약형은‘야’이며,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 즈카르야 등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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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2408호 2016.11.13  20대 청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싶지만, 마음속에는 그와 반대되는 욕망들이 너무나 많고 강력합니다. 매번, 욕망에 쓰러져 고해성사를 보는 것도 힘들고, 피정에 가봐도 죄에 대한 분석이나 심판하는 내용은 도움이 안 됩니다. 죄의 욕망에 벗어나는 구체적인 방법은 없을까요? 권순호 신부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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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2193호 2012.12.23  대림 시기에 판공성사를 보려고 하는데 막상 뭘 고백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딱히 기억나는 죄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꼭 성사를 보아야 합니까? 홍성민 신부  175
191 2404호 2016.10.16  욥기를 읽다 보면 이런 의문이 듭니다. 욥은 하느님의 계명을 잘 지키며 의롭게 살았는데 왜 그토록 많은 고통을 당하는 건가요? 염철호 신부  174
190 2317호 2015.03.01  성경을 한 번 다 읽어본 예비 신자입니다. 구약성경에는 하느님의 존재가 무시무시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제 기억에는 이민족의 여자와 아이까지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라고 생각하는데 지나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권순호 신부  174
189 2255호 2014.01.19  하느님에 대해 생각중인 수능 끝난 고3입니다.^^ 하느님께서 제 아버지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편하고 제 주인이신 것도 인정하지만, 제가 하느님의 종이라는 게 약간 거북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자녀와 종, 두 단어의 이질감이 너무 큽니다. 장재봉 신부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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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2268호 2014.04.13  2014년 전례력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3월 4일 연중 제8주간이 화요일에 끝나고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사순 시기에 들어간 것은 이해가 되는데요. 사순과 부활 시기에 이어 시작된 연중 시기, 즉 6월 9일이 연중 제10주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연중 9주간은 어디로 사라졌나요? 장재봉 신부  173
186 2379호 2016.04.24  성경은 언제부터 있었나요? 예수님 시대 때도 있었나요? 염철호 신부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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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2173호 2012.08.12  제 친구가 성당에서 같은 신자들에게 상처를 받아서 더는 신자생활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친구의 마음을 돌리고 싶은데, 뭐라고 말해 주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홍성민 신부  172
183 2284호 2014.08.03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가 무엇입니까? 유럽의 교회가 그 영향으로 잘못된 길에 들어섰던 연유도 알고 싶습니다. 장재봉 신부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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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2375호 2016.03.27  삼위일체 교리가 이해하기 너무나 어렵습니다. 머리로 알아듣는 교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믿는 교리라고 배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알아듣고 싶습니다. 홍성민 신부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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