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394호 2016.0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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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염철호 신부 |
창세기에서 야곱은 이사악을 속이고 하느님의 축복을 가로채는데,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에사오가 좀 측은해 보입니다.
염철호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jubo@catb.kr
창세 25, 33에서 하느님은 이사악의 부인 레베카에게 에사오가 야곱을 섬기게 되리라고 알려주십니다.(창세 25, 23) 레베카와 야곱이 이사악을 속이고 하느님의 축복을 가로챈 것도 큰 틀에서 보면 하느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사악이 알지 못하던 하느님의 계획을 레베카와 야곱이 이루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창세기에는 이사악보다 레베카가 더 중요한 인물로 길게 다루어집니다. 또한 하느님이 당신 계획을 알려주신 것도 이사악이 아니라 레베카였습니다.
물론 방법적으로 볼 때 잘못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야곱이 속임수를 써 가며 얻으려 하던 것이 하느님의 축복이었음을 말해 줍니다. 본래 하느님의 축복은 항상 장자를 통해서 전해지지만 장자였던 에사오는 배고픔을 못 이기고 빵과 불콩죽 한 그릇에 하느님의 축복을 팔아버립니다.(창세 25, 29∼34) 하느님의 축복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에사오와 달리 야곱은 집을 떠나 삼촌 집에서 오랜 더부살이마저 견딜 정도로 하느님의 축복을 귀하게 여깁니다. 성경은 이 이야기를 통해 누가 하느님의 축복에 합당한지를 드러냅니다. 인간적 관점에서 에사오가 측은해 보이고, 야곱이 얄미워 보인다고 해서 성경의 초점을 흐려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교활한 야곱과 피해자 에사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을 귀하게 여기는 자가 결국 축복을 받게 되었으며, 자신들이 바로 그 야곱의 후손임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