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395호 2016.08.14 
글쓴이 홍성민 신부 

딸아이와 이야기하다 보면 저한테 짜증을 내고 화를 내어서 싸울까 봐 대화를 피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듯합니다. 이야기하자니 싸울 것 같고…, 하지 않자니 더 나빠지는 것 같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홍성민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parvus@hanmail.net

  부모와 자식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또한 동시에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관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먼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집이 뭔가 더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원래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어로 이해한다는 말을‘understand’라고 합니다.‘stand’는‘서다’라는 뜻이고,‘under’는‘아래’라는 뜻이니,‘아래로 선다’라는 뜻입니다. 즉, 자신이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뜻을 먼저 살펴야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아래로 선다는 말이 마치 물구나무를 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물구나무는 위아래가 바뀌는 것입니다. 즉 상대가 나를 이해시켜주는 것이 아니라,‘내가 너를 이해해보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내 입장과 내 생각을 뒤집어 상대방에 맞추어야 비로소‘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문제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입장이나 생각이 같아져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다름을 용서하여 화해가 이루어지면, 그 다름은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기회가 되고, 나아가 오히려 고마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만나기 전에 먼저 주님께,“제가 오늘 제 아이를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주님의 마음으로 느끼게 하시어, 그 아이 안에 계신 주님을 제가 만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시면 아이를 이해하고 대화하시는 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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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95호 2016.08.14  아이와 이야기하다 보면 저한테 짜증을 내고 화를 내어서 싸울까 봐 대화를 피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듯합니다. 이야기하자니 싸울 것 같고…, 하지 않자니 더 나빠지는 것 같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홍성민 신부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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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2393호 2016.07.31  천주교는 세례를 받기 위해 최소한 6개월 이상 교리를 받아야 합니다. 다른 일로 바쁜 현대인들에게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개신교처럼 천주교도 입교의 문턱을 낮추어 짧은 기간의 교육으로 세례를 받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권순호 신부  333
233 2392호 2016.07.24  성당에 가면 늘‘기뻐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내 삶이 그리 기쁘지도 않고, 또 그리스도인이라면 왜 기뻐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홍경완 신부  231
232 2391호 2016.07.17  미사참례 중에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있는 교우를 흔히 봅니다. 어른 앞에서도 그러지 않는데, 하물며 하느님의 제사에 참례하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꾸짖어 주고 싶습니다. 장재봉 신부  342
231 2390호 2016.07.10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때, 무엇이 더 좋은 선택일지 몰라 불안합니다. 기도도 하지만 여전히 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기도해야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을까요? 홍성민 신부  141
230 2389호 2016.07.03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 이야기하다 돌연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것으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던데 왜 그런가요? 염철호 신부  188
229 2388호 2016.06.26  자녀들이 좋은 대학과 좋은 회사에 들어가 성공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은 못 들어가는 것인데, 그런 기도는 이기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녀들을 위해 어떻게 기도할지 막막합니다. 권순호 신부  314
228 2387호 2016.06.19  세상은 여전히 정의보다는 불의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고, 조금 더 이기적으로 약삭빠르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을 넘어서는 희망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홍경완 신부  147
227 2386호 2016.06.12  막내며느리가 될 집안은 독실한 개신교입니다. 결혼하면 격주로 번갈아서 교회와 성당을 가자고 언약했다는데, 관면 혼배 등 어떻게 해야 가장 현명한 일일지 몰라 문을 두드립니다. 장재봉 신부  489
226 2385호 2016.06.05  성령 강림 대축일에 신부님께서 강론으로 성령은 우리 안에 일치를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과 하나가 되어주는 것이 성령의 뜻인가요? 만약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의 편도 될 수 없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홍성민 신부  249
225 2384호 2016.05.29  성경에는 족보 이야기가 많은데 너무 지루해요. 꼭 읽어야 하나요? 염철호 신부  133
224 2383호 2016.05.22  예수님께서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리고,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우리 모두 지금 장애인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참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입니다. 권순호 신부  190
223 2382호 2016.05.15  미사와 기도를 비롯한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봉사활동도 나름 부지런히 하려고 애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는 것이 기쁘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을까요? 홍경완 신부  303
222 2381호 2016.05.08  본당에 신부님이 새로 부임하면 늘 긴장하게 됩니다. 이런저런 분들을 겪으면서 이제는“사제는 지나치는 객”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래지요. 솔직히 본당의 주인은 본당 신자들이지 않습니까? 이 점을 신부님들께서 유념해주신다면 서로 행복한 본당을 꾸릴 수 있지 않을까요? 장재봉 신부  578
221 2380호 2016.05.01  성사를 볼 때마다 찝찝한 의무감에 성사를 봅니다. 저 자신이 완벽한 것은 분명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회개’해야 할 만큼 큰 죄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이런 제가 교만하다고 느껴지지만, 회개해야 한다면 저 자신의 어떤 점을 뉘우쳐야 하는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홍성민 신부  347
220 2379호 2016.04.24  성경은 언제부터 있었나요? 예수님 시대 때도 있었나요? 염철호 신부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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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2377호 2016.04.10  어떤 이는 마지막까지 모든 것 다 누리다가 하느님 품으로 가고, 어떤 이는 가난과 질병의 고통 속에서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하느님의 공평하심을 믿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홍경완 신부  493
217 2376호 2016.04.03  기도 중에 어떤 생각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럴 때 그것이 제 뜻인지 하느님의 뜻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어서 답답합니다. 그래서 제 뜻이라면 제발 그 생각을 멈추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멈추어지지가 않고 이제는 기도 때만 아니라 하루 종일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제 뜻과 주님의 뜻을 어떻게 구분할 수가 있을까요? 장재봉 신부  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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