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261호 2014.02.23 
글쓴이 홍경완 신부 

사제를 꿈꾸던 한 예비신학생이 성적 미달로 신학교 입학이 좌절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속이 상했습니다. 소중한 성소를 이렇게 성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요?

홍경완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장 mederico@cup.ac.kr

사제는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직무를 지닌 교회의 일꾼입니다. 그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전제는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입니다. 성경과 교회의 전통이 고백하는 하느님을 먼저 알아야만 그분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적 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기에 영성 생활의 축인 기도생활,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관계가 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하느님을 아는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작업은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 모두가 평생에 걸쳐 해야 하는 과제이지만, 특별히 가르침의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사제들에게는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요구되는 작업입니다. 이 과제 수행을 위한 현실적 잣대로 성적이 등장할 뿐입니다. 성소가 성적순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부르심의 길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 길이 어떤 것이든 관계없이 하느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성 안셀모의 말씀처럼 그건 신앙의 게으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분을 믿고 있는지를 알고자 할 때 그분은 늘 우리의 생각과 계획을 뛰어넘어 먼저 오시며, 그때 우리는 하느님을 새롭게 체험합니다. 그리고 그런 새로움은 하느님을 지적, 영성적, 공동체적으로 알고자 할 때에만 가능해집니다.
 

번호 호수 제목 글쓴이 조회 수
256 2416호 2017.01.08  사실 이번이 처음 개명이 아닙니다. 첫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순간적으로 앞뒤 구분 없이 무속인에게 작명을 받아서 개명을 하였지요.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을 벗어버리고 새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마냥 미래가 밝고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미신을 믿고 내 소중한 이름을 바꾼 것도 모자라 그 이름으로 성당을 다니고 일상생활을 하려 했던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더군요. 하루빨리 이 이름을 떨쳐 버려야겠단 마음에 신부님께 장재봉 신부  370
255 2415호 2017.01.01  새해를 맞이해서 술도 좀 줄이고, 담배도 끊고 싶은데, 며칠 만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듭니다. 좋은 방법이 있으면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홍성민 신부  163
254 2414호 2016.12.25  성경의 가르침과 현실 사이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습니다. 염철호 신부  121
253 2413호 2016.12.18  예수님께서는 재산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까지도 버리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제나 수도자가 되지 않은 이상 일반 신자가 이 말씀을 따르기는 불가능한 듯합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요? 권순호 신부  151
252 2412호 2016.12.11  현실에만 매달리며 사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과 반대된다고 들었습니다. 살기 위해선 그래야 되는 것 아닌가 싶어 의문이 생깁니다. 홍경완 신부  80
251 2411호 2016.12.04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불의도 죄라고 했습니다. 먼저 상대편에게 용서를 구한 후에 하느님께 사함을 청하는 것이 순서라고 봅니다. 성사로 모든 잘못이 없어집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도 안고 가야 합니까? 장재봉 신부  338
250 2410호 2016.11.27  성경에 나오는 부정직한 집사에 대한 비유는 요즘 우리 사회를 혼란으로 빠트린 사건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주인이 그 불의한 종을 오히려 칭찬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를 드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홍성민 신부  215
249 2409호 2016.11.20  겸손하라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1베드 5, 5 참조) 어느 정도 겸손해야 하나요? 요즘은 자기 표현(PR)시대인데 교만하지만 않으면 되지 않나요? 염철호 신부  317
248 2408호 2016.11.13  20대 청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싶지만, 마음속에는 그와 반대되는 욕망들이 너무나 많고 강력합니다. 매번, 욕망에 쓰러져 고해성사를 보는 것도 힘들고, 피정에 가봐도 죄에 대한 분석이나 심판하는 내용은 도움이 안 됩니다. 죄의 욕망에 벗어나는 구체적인 방법은 없을까요? 권순호 신부  177
247 2407호 2016.11.6  이해하지 못하면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신앙생활도 그래서 힘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저를 좀 이해시켜 주십시오. 홍경완 신부  152
246 2406호 2016.10.30  만일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셨다면, 어째서 죄악이 이렇게 맹위를 떨치는가요? 장재봉 신부  565
245 2405호 2016.10.23  미사 시작 때마다 하는 고백의 기도도 그렇고, 훈계 같은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면 제 마음에서 죄책감과 수치감이 듭니다. 요즘 TV에서 하는 강연에서는 위로나 격려의 메시지가 많은데, 성당에서는 오히려 우리 죄와 부족함을 더 강조하는 듯합니다. 홍성민 신부  289
244 2404호 2016.10.16  욥기를 읽다 보면 이런 의문이 듭니다. 욥은 하느님의 계명을 잘 지키며 의롭게 살았는데 왜 그토록 많은 고통을 당하는 건가요? 염철호 신부  174
243 2403호 2016.10.09  저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서른살 청년입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계속 신앙을 강요하시만 저의 자유에 대한 구속이라는 생각이 들어 성당에 더 가고 싶지 않습니다. 왜 저의 자유를 구속하며 신앙생활을 계속 해야 하는가요? 권순호 신부  332
242 2402호 2016.10.02  물질적인 것에도 그렇고, 자녀도 그렇고, 너무 많은 것들에 애착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을 버리라는 복음의 요청 앞에서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버리고 사는 게 과연 가능한지도 의문입니다. 홍경완 신부  290
241 2401호 2016.09.25  지는 게 싫었고 능력 있는 친구를 보면 미웠고 이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예능전공이라서 의사 친구들보다 못한 처지로 살게 하다니, 하느님은 너무 불공평합니다. 하느님께서 옆에 있으면 진짜 한 대 확 때리고 싶습니다. 장재봉 신부  440
240 2400호 2016.09.18  감사드리며 살고자 하지만 요즘 제 삶에는 감사드릴 만한 일이 없습니다. 하는 일마다 잘 안 되고, 가족간에도 크고 작은 갈등이 늘 있어 괴롭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면 제발 오늘 하루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더 바라는 저에게 감사는 사치같이 느껴집니다. 홍성민 신부  399
239 2398호 2016.09.04  저는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당에서 학생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말 친절한데, 집에서 자녀나 남편, 부모 등 가족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족을 더 사랑해야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권순호 신부  445
238 2397호 2016.08.28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고 늘 반성하면서도 틈만 나면 더 가지고 싶어 합니다. 그럴수록 버리라는 성경 말씀은 더 무겁기만 합니다. 더 가지고자 하는 삶은 나쁜가요? 홍경완 신부  199
237 2396호 2016.08.21  집을 방문한 지인이“성당 가니까 안 믿겠지만 우산걸이를 현관에 놓아두면 복이 나간다”는 말이 있으니 자신도 믿는 건 아니지만“치우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자주 오시는 분이라 상대가 편하기를 바라면서 옮겼는데, 혹시 제가 미신을 믿는 것처럼 보였을까봐 걱정이 됩니다. 장재봉 신부  375
색칠하며묵상하기
공동의집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