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234호 2013.0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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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권순호 신부 |
저는 오랫동안 주일 학교에서 교사로 봉사 활동을 하였습니다. 저의 봉사와 희생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저의 삶에 아무 이익이 되지 않는 시간 낭비였다는 회의가 옵니다.
권순호 신부(남산성당 부주임) albkw93@hotmail.com
‘노동의 소외’라는 말을 들어 보았습니까? 철학자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만든 개념이 ‘노동의 소외’입니다. 노동의 결과물을 노동자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가져가며,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에 대한 자율권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동의 소외’라는 개념을 그리스도의 관점에 더욱 깊게 묵상하신 분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이십니다. 마르크스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은 노동을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필요악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교황 요한 바로오 2세는 진정한 소외는 노동 자체를 천시하는데 온다고 말합니다. 노동은 나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 자체로 고귀하고 가치 있고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것을 ‘신앙생활의 소외’라 부를 수 있습니다. 성당에서 봉사하고, 기도하고, 미사 참례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이후에 보상이 있기 때문에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고 가치 있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사랑은 다른 이익을 보지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나는 내 아이들 자체를 보지 못하고 나의 자랑을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목적과 수단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소외가 일어나지 않고 그 자체로 좋고 기쁜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내 삶에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본다면 아무도 몰라줘도 기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