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512호 2018.10.28 
글쓴이 홍경완 신부 

주일에 일하지 말고 쉬라는 파공의무가 여전히 유효한지요? 하는 일에 따라 밤낮이 따로 없고, 평일과 휴일의 구분도 모호해진지 오래라서 던지는 질문입니다.
 

홍경완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장 jubo@catb.kr
 

   구약성경의 안식일에 대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성경은 쉼을 지켜야 하는 계명, 하느님께서 내리신 요청으로 이해합니다. 그날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합니다. 이건 특별한 가르침입니다.
   거룩한 것은 대개 장소와 관련 있습니다. 성지니 성소니 하는 단어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안식일 규정은 장소가 아닌 시간을 성화시키고 있습니다. 이게 성경의 독특한 관점입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일정한 장소에 터를 잡고 살아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삶을 바꾸고 더 낫게 만들기 위해 살고 있는 집과 주변 환경, 타고 다니는 차 등에 신경을 씁니다. ‘장소’를 개선하려는 노력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은 그런 장소가 아니라 시간을 질적으로 더 낫게 고치라고 요구합니다.  
   시간은 기다리지 않습니다. 흘러가 버려 잡을 수 없기에, 내가 거기에 맞춰야 합니다. 성경이 안식일을 계명으로 만들어 놓은 이유는,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아 규칙적으로 쉬게 하려는 배려입니다. 엿새 일하고 하루 쉬신 하느님을 따라 쉬십시오. 꼭 주일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그 쉼 속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여유와 기쁨이 생겨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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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12호 2018.10.28  주일에 일하지 말고 쉬라는 파공의무가 여전히 유효한지요? 하는 일에 따라 밤낮이 따로 없고, 평일과 휴일의 구분도 모호해진지 오래라서 던지는 질문입니다. 홍경완 신부  71
335 2277호 2014.06.15  신앙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현실은 많은 경우 적당히 타협도 하고 불의도 눈감아 주면서 살아가길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지식한 사람, 완고한 사람으로 따돌림을 받기도 합니다. 신앙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고 싶은데 고지식하고 완고하다는 소리를 듣기는 싫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홍경완 신부  72
334 2223호 2013.07.07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는 사회의 부정부패,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왜 하느님께서는 이런 일들을 내버려두시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아가 ‘하느님은 과연 계실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홍성민 신부  73
333 2072호 2010.10.17  대자가 비신자와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했습니다. 이러한 경우도 교리적으로 조당에 해당하는지요? 알쏭달쏭해서 여쭈어 봅니다. 장재봉 신부  75
332 2323호 2015.04.12  창조, 홍수 이야기 등을 읽을 때마다 현대인이 보기에 다소 허무맹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염철호 신부  78
331 2304호 2014.12.14  타 종교인과 대화를 해보면 종교 간의 소통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 종교인과는 논쟁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장재봉 신부  80
330 2412호 2016.12.11  현실에만 매달리며 사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과 반대된다고 들었습니다. 살기 위해선 그래야 되는 것 아닌가 싶어 의문이 생깁니다. 홍경완 신부  80
329 2320호 2015.03.22  부모님의 말씀대로 정신없이 공부만을 했습니다. 대학가면 좋은 친구도 생기고 참된 스승을 만나서 멋진 캠퍼스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현재 상황은 너무 실망스럽기만 합니다. 장재봉 신부  81
328 2345호 2015.09.13  현실에 너무 매달려 있는 자신을 볼 때마다 이건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은 들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홍경완 신부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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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2221호 2013.06.23  무한 경쟁에 내던져진 자녀를 보면 측은한 마음이 많이 듭니다. 경쟁만이 유일한 길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외면하면 낙오자가 될 것 같아 두렵기도 합니다. 경쟁사회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눈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홍경완 신부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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