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301호 2014.11.23 
글쓴이 홍경완 신부 

그러지 말자고 하면서도 하느님의 존재를 자꾸 의심하게 됩니다. 의심하는 것이 죄라는 생각이 들어 괴롭기까지 합니다. 하느님을 의심하는 것이 정말 죄가 되나요?

홍경완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장 mederico@cup.ac.kr

모든 일을 하느님과 함께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난한 이들을 예수님처럼 섬겼던 우리 시대의 성녀,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아름다운 삶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투철한 신앙의 삶을 살았던 분의 내적 일기에도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고통을 호소한 내용이 등장합니다.“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며 기도하려 해도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이 어둠은 너무나 깊고 저는 혼자입니다. 하느님은 저를 원하지 않으시고 저를 버렸습니다. 제 믿음은 어디로 갔을까요? 깊은 바닥에도 내면엔 공허와 어둠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 속에서 하느님의 부재를 체험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아기들을 데려오면서, 구더기 들끓는 상처를 닦아내면서 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의심이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의심을 제대로 하게 되면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진지하게 다시 묻게 되고, 그 물음을 통해 진짜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수순으로 넘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의심은 믿음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계기이며, 하느님께 향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심에 갇혀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문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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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01호 2014.11.23  그러지 말자고 하면서도 하느님의 존재를 자꾸 의심하게 됩니다. 의심하는 것이 죄라는 생각이 들어 괴롭기까지 합니다. 하느님을 의심하는 것이 정말 죄가 되나요? 홍경완 신부  203
115 2305호 2014.12.21  좀 더 가지고 싶고 채우고 싶은 욕심이 자꾸 생깁니다. 남들과 비교하게 되고, 내가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허전한데, 그게 신앙인의 자세는 아닌 듯싶어 맘이 편치 않습니다. 홍경완 신부  146
114 2311호 2015.01.18  밖으로 보이는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옷이나 가방, 신발 등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남들과 비교를 하고 부러워합니다. 신앙인이라면 이런 것쯤은 무시하는 것이 옳은 것 같은데 잘 안됩니다. 홍경완 신부  71
113 2316호 2015.02.22  십일조와 관련해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교무금과 2차 헌금을 포함한 주일헌금, 불우이웃돕기 성금과 몇몇 단체에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금액을 합하면 수입의 10분의 1 정도 됩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교무금만 10분의 1을 바쳐야 한다고 말을 하기에, 제가 십일조를 잘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되어 여쭙니다. 홍경완 신부  148
112 2321호 2015.03.29  권위적인 교회, 권위적인 성직자들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안타깝지만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홍경완 신부  71
111 2326호 2015.05.03  유물론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만 신앙과 관련해서는 헷갈립니다. 우리 신앙과 유물론은 어떤 관련에 놓여 있는지요? 홍경완 신부  69
110 2331호 2015.06.07  갈수록 정의보다는 불의가 더 힘을 발휘하는 세상에서 정의의 하느님이 계신다면 왜 가만히 계신 것일까 하는 의심이 점점 더 많이 듭니다. 불의가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은 아닌가요? 불의와 부조리 속에서 신앙을 지킬 힘은 점점 더 약해집니다. 홍경완 신부  116
109 2336호 2015.07.12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온 누리에 다 계신데, 왜 ‘주님의 기도’에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홍경완 신부  89
108 2345호 2015.09.13  현실에 너무 매달려 있는 자신을 볼 때마다 이건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은 들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홍경완 신부  81
107 2350호 2015.10.18  하느님을 떠올리면 두렵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성경에도 두려운 하느님과 자비로운 하느님이 같이 등장하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홍경완 신부  91
106 2355호 2015.11.22  ‘깨어있으라’라는 복음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디에, 어떻게 깨어있어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보지만 답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홍경완 신부  180
105 2361호 2015.12.27  본당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데, 힘들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좀 지친 것 같습니다. 활동을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될까요? 홍경완 신부  199
104 2367호 2016.01.31  청소년기에 접어든 자녀들과의 관계가 서먹서먹해져서 힘이 듭니다. 대화상대자가 되는 좋은 부모이고 싶은데 그 길을 모르겠습니다. 홍경완 신부  229
103 2372호 2016.03.06  가족들끼리 함께 하는 시간이 줄면서 대화도 점점 없어져 하숙집이 되어버렸습니다. 단란한 가족은 환상일 뿐인가요? 홍경완 신부  173
102 2377호 2016.04.10  어떤 이는 마지막까지 모든 것 다 누리다가 하느님 품으로 가고, 어떤 이는 가난과 질병의 고통 속에서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하느님의 공평하심을 믿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홍경완 신부  493
101 2382호 2016.05.15  미사와 기도를 비롯한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봉사활동도 나름 부지런히 하려고 애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는 것이 기쁘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을까요? 홍경완 신부  303
100 2387호 2016.06.19  세상은 여전히 정의보다는 불의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고, 조금 더 이기적으로 약삭빠르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을 넘어서는 희망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홍경완 신부  147
99 2392호 2016.07.24  성당에 가면 늘‘기뻐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내 삶이 그리 기쁘지도 않고, 또 그리스도인이라면 왜 기뻐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홍경완 신부  231
98 2397호 2016.08.28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고 늘 반성하면서도 틈만 나면 더 가지고 싶어 합니다. 그럴수록 버리라는 성경 말씀은 더 무겁기만 합니다. 더 가지고자 하는 삶은 나쁜가요? 홍경완 신부  199
97 2402호 2016.10.02  물질적인 것에도 그렇고, 자녀도 그렇고, 너무 많은 것들에 애착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을 버리라는 복음의 요청 앞에서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버리고 사는 게 과연 가능한지도 의문입니다. 홍경완 신부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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