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519호 2018.1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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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권순호 신부 |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원수를 미워하지 않기도 어려운데 사랑까지 하라니 힘든 계명입니다. 이 계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을까요?
권순호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albkw93@hotmail.com
‘사랑하기’와 ‘용서하기’ 어느 것이 쉽습니까? 라고 사람들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다들 사랑하기가 쉽다고 말하더군요. 사랑은 내가 좋아하고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들과 관련이 있는 반면, 용서는 내가 싫어하고 나에게 해를 가한 사람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용서보다 쉽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랑의 대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으십니다. 내가 좋아하고 내게 잘해주는 사람만 아니라, 내가 해를 가한 원수마저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단번에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기까지 단계가 필요합니다. 그를 미워하지 않기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에 대한 나의 평가가 최종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세를 전제합니다. 그 사람의 개별 행위는 잘못되었지만 그 사람은 언젠가 변할 수 있다는 것, 그가 다른 부분에서는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나의 최종 심판을 유보하고 기다려 주는 것이지요. 내가 미워하는 원수 안에 우리가 모르는 성령의 이끄심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의 태도, 자기 비움의 태도가 여기에 요구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듯이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2000년 전 십자가에서 자신을 배신한 제자들 바라봤을 때, 그리고 지금 하느님을 저버리는 우리를 바라볼 때 사랑할 마음이 저절로 드실까 묵상해 봅니다. 예수님이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시고 하느님의 영으로 가득 차셨기에 자신을 미워하고 죽이려는 사람들마저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도 사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