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490호 2018.0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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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홍성민 신부 |
아이에게 평소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지만, 제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거나, 일해야 할 때는 스마트폰을 주곤 하였는데 후회하고 있습니다. 점점 빠져드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홍성민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parvus@hanmail.net
스마트폰의 자극은‘즉각적’입니다. 원하는 것을 바로 찾고, 바로 보여주는 것이 스마트폰의 매력입니다. 여기에 적응된 사람은 참고, 기다리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우리는 모두 원하는 결과를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쉽게 얻고 싶어 합니다. 스마트폰의 기술은 그러한 우리의 마음을 충족시켜줍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기술만이 아니라, 휴대전화기를 아이에게 내주었던 우리 어른들의 마음도, 원하는 결과를 좀 더 쉽게 얻고자 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아이를 돌보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스마트폰을 내주었던 것이라면, 이러한 양육태도 역시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렵고 오래 걸리지만, 아이의 짜증을 들어주고, 달래주고, 함께 놀아줘야 하는 어른(부모)의 역할은 손쉽게 건너뛰면서, 아이에게만 참고 견디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일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 20장 1절에서 16절에‘선한 포도밭 주인’ 에 대한 비유가 등장합니다. 이 비유에서 포도밭 주인은 오전 9시, 12시, 오후 3시, 그리고 오후 5시에 일할 사람들을 데리고 왔고, 그들에게 똑같이 하루의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씩을 줍니다. 우리 눈에는 처음부터 일한 사람들에게는 불공평한 처사 같습니다. 저는 이 복음을 묵상하면서, 구원은 품삯으로 주어진 한 데나리온이 아니라, 하느님의 포도밭에서 하느님과 함께 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잘 교육한다는 것 역시 아이를 통해 이루고자 한 결과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나눈 시간과 그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