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459호 2017.1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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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염철호 신부 |
주님의 기도에“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나도 용서받지 못하는 걸까요?
염철호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jubo@catb.kr
마태오 복음의 기도문을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저희에게 빚진 이들의 빚을 탕감해 주었듯이 저희 빚을 탕감해 주소서.”입니다.(마태 6,12) 이 말의 의미는“매정한 종의 비유”(마태 18,23∼35)와 연결할 때 명확히 드러납니다. 이 비유에서 임금은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의 빚을 모두 탕감해 줍니다. 1탈렌트가 6,000데나리온이고 1데나리온이 숙련공 하루 일당이니, 하루 일당을 10만 원으로 잡더라도 만 탈렌트면 대략 6조 원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임금에게서 그런 어마어마한 돈을 탕감받은 사람이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곧 천만 원가량 빚진 동료를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 매정한 종을 잡아들여“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하며 모든 빚을 다 갚으라고 명합니다. 이 말씀을 바탕으로 용서 관련 기도 내용을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원죄로부터 이어진 모든 죄의 고리, 곧 만 탈렌트를 빚진 이들이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 빚을 모두 탕감받았습니다. 이는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 덕분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런 우리이기에 우리도 아버지처럼 백 데나리온을 빚진 형제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용서, 자비를 되돌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 18,35) 이렇게 보니 이 기도는 주님께 단순히 용서만 청하는 기도가 아니라 나도 형제들에게 용서를 베풀 것이라는 다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