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452호 2017.0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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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홍경완 신부 |
지나치게 현실적인 문제만 고민하다가,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 슬퍼졌습니다. 이 슬픔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하지도 못하겠습니다.
홍경완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장 mederico@cup.ac.kr
북아일랜드 출신 프로축구 선수가 신학교에 가서 가톨릭 신부가 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기사 내용 중에‘초월적 가치’라는 단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세적 가치보다 초월적 가치를 좇아서 삶의 방향을 바꿨다는 인터뷰였습니다. 세상의 가치를 뛰어넘는 가치라 해서,‘초월적’이라 했을 겁니다. 신앙은 대표적인 초월적 가치입니다. 인간의 영혼을 어루만져주고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묵상하고 선포하는 일은 이 세상 안에서 값어치가 나가는 일이기보다는, 이 세상을 넘어서 볼 때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안락한 삶, 건강과 명예 등을 말하는‘현세적 가치’는 이 초월적 가치 반대편에 자리합니다.
신앙인은 누구나 이 두 가치,‘현세적 가치’와‘초월적 가치’사이에서 매번 고민을 합니다. 답은 그때그때 다릅니다. 땅에만 매달려 있을 수도 없고, 반대로 하늘만 쳐다보면서 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땅이 현세의 영역이라면 하늘은 초월과 거룩함의 영역입니다. 인간은 이 두 영역 사이에 있는, 하늘과 땅‘사이 존재’입니다. 질문자의 슬픔은 아마도 이‘사이’를 잃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초월적 가치’를 포함시켜야‘사이’가 만들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