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450호 2017.0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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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홍성민 신부 |
요즘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점점 더 커집니다. 그런데 일을 내려놓고 쉬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어떤 일은 꼭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그 일을 놓기가 힘이 들고, 불안한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홍성민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parvus@hanmail.net
‘포기’는 우리에게 비겁함이나 게으름과 같은 의미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포기’는 또 다른 의미로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는‘겸손함’이고, 내 삶의 경계와 안전을 지키는‘지혜’라고 생각합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지금껏 우리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게 하여, 예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아무리 내가 보고 싶어도 같은 장소에 있지 않으면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아무리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도 시간이 맞지 않으면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지금 같이 있지 않아도, 또 다른 일을 하는 중에도, 심지어 여러 사람이 동시에‘단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이 줄어들고, 그만큼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내 삶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기에 더 여유롭고 더 편안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어쩔 수 없다고 여기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것들이 가능해지면서, 우리의 삶에서 휴식과 여유는 점점 더 사라져갑니다. 예전에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딱히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으니 잠깐씩 눈을 붙이던 사람들도, 이제는 모두 다 스마트폰을 보며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보고 싶은 것을 봅니다. 사무실이 아니면 할 수 없던 업무도 이제는 언제 어느 곳에서든 업무를 보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더 쉬지 못하고, 그래서 더 편안해지지 못하는 우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 할 수 있어서 행복한 나보다, 다 할 수 없어도 행복한 내가 훨씬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