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2974호 2015.12.20. 18면 

[복음생각] 우리 역시 성모님처럼 / 염철호 신부

대림 제4주일(루카 1,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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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막바지인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는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엘리사벳은 유다 산골의 에인 케렘에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나자렛에서는 12km 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아마도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출산 준비에 도움을 주기 위해 에인 케렘을 방문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성령으로 아이를 잉태했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부담감 때문에 자신처럼 신비롭게 아이를 잉태한 엘리사벳을 만나 서로 격려하며 힘을 얻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보자마자 외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그러면서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선택이 너무나도 훌륭한 것이었음을 밝히며,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행복하다(마카리오스)”로 시작되는 말을 대개 ‘참 행복 선언’이라고 부르는데, 가장 대표적인 참 행복 선언은 산상 설교에 나옵니다(마태 5,3-10). 루카 복음에도 참 행복 선언이 자주 등장하는데, 간추려 보면 가난한 이들(루카 6,20),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지금 우는 사람들(루카 6,21),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쫓겨나고 모욕받는 이들(루카 6,22), 예수님을 의심하지 않는 이들(루카 7,23), 예수님이 이루는 것을 보고 있는 제자들(루카 10,23),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루카 11,28), 재림 때 주인이 와서 볼 때 깨어 있는 종들(루카 12,37.38.43), 잔치를 베풀 때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는 이들(루카 14,13)이 참으로 행복한 이들입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루카 복음에서 참으로 행복한 이들은 재물이나, 권력을 지닌 이들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 이 땅에서 가난하고, 굶주리고, 울며 사는 이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스스로 가난하고 굶주리고 우는 자리로 내려간 이들, 예수님의 뜻을 따르다가 박해를 받게 되는 이들, 그런 이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이들입니다.

이제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보고 행복하다고 외친 이유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마리아가 행복한 이유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떤 여인이 “당신을 배신 태와 당신에게 젖 먹인 가슴은 복됩니다”라는 행복 선언을 할 때,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 복됩니다”라고 대답하십니다(루카 11,27-28). 결국, 마리아가 참으로 복된 이유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고, 또 그분의 뜻에 따랐기 때문입니다. 성모님 스스로가 가난하고, 굶주리고, 울며 사셨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삶을 스스로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주님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에게 마련된 주님의 뜻을 기꺼이 맞아들입니다. 이런 믿음은 훗날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이라는 시메온의 예언(루카 2,34)처럼 큰 고통을 겪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입을 함구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며, 아들의 죽음을 참아 냅니다. 이런 마리아였기에 결국 부활한 아들을 직접 보게 되었고, 처음 아들을 잉태할 때 받아들였던 성령을 다시 입게 됩니다(사도 1,14). 그리고 아들과 함께 하늘에 올라 영원한 화관을 쓰게 됩니다.

이제 네 번째 대림초가 켜졌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역시 마리아처럼 주님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복된 사람이 됩시다. 세상의 진정한 행복은 재물이나 권력, 자리에 있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사는데 있음을 기억합시다. 그러면 우리 역시 성모님처럼 주님의 구원과 자비 자체이신 예수님을 우리 안에 온전히 모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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