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부산일보 
게재 일자 2016.01.22. 28면 

[부산 종교지도자 신년대담] 1. 황철수 천주교 부산교구장

"타인 위해 스스로 '제물'이 되는 삶… 그래야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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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부산지역 종교 지도자들을 차례로 만나 한국 사회 현안 진단과 포교 방향을 알아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대안도 없이 거침없이 내달리는 '비정한 자본주의'. 여기서 인간은 언제든 교체해도 아무런 상관없는 부품처럼, 진정성과 생명력을 상실한 허무한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극심한 물신주의와 사회 양극화 현상에 직면해 있는 이때, 평생을 청빈과 절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가톨릭 사제로서 32년의 성상을 보낸 천주교 부산교구장 황철수(사진) 주교를 부산 남천성당에서 만났다. 이웃집 아저씨같이 포근한 미소를 연신 지으며 기자에게 허브 차 한 잔을 직접 달여 내놓는다.
 
'세월호' 겪었지만
여전히 세상은 캄캄  
도덕성 결여한  
정치인들 안타까워  
각자 맡은 분야서  
제 역할 다했으면 


"저는 어떤 자리에서든 훈시하는 듯한 거대 담론을 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짐짓 꾸며진 말보다는 각자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하려면 스스로를 사랑해야 하며, 참되고 선한 삶을 설교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선한 삶을 살아야 하며, 세상 정의를 구현하려면 스스로 정의로워야 합니다"라고 강조하는 황 교구장. 그는 이러한 실천을 '제관(祭冠)이 제물(祭物)이 되는 삶'으로 압축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제들은 스스로 제물이 되는 삶, 즉 상대를 위해 스스로를 내어주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교구장이 되면서 너무 관리 행정가가 돼 가는 느낌이에요. 옳은 사제로서 멀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가끔 들어요. 행정적인 것 외에도 이제는 사제로서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라고 소회를 밝힌다. 

황 교구장은 2013년부터 본당 공동체의 쇄신과 성숙을 위해 '본당 재탄생을 향한 새 복음화'라는 5년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올해 사목 지침을 '기초공동체 복음화의 해'로 정했다. 황 교구장은 "한 성당에 약 3천 명 정도의 구성원이 있는데 성당 안에서도 물질화·중산층화돼 가난한 삶이 들어설 수 있는 여지가 없다"며 "구성원들이 형제·자매같이 지내며 가졌으면서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살아가는 자세가 바로 '기초공동체' 정신"이라고 밝혔다. "한 예로 성당을 짓는 것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소박하게 짓는 것을 바라지만 일부 신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공사비 상한선을 20억 원 정도로 제한했던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황 교구장은 "우리 사회가 세월호라는 엄청난 사건을 겪었음에도 아직까지도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며 "이 사건을 절대 잊지 말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부채 의식을 갖고 함께 아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라며 말을 잇는다. "주류 세상이 주목하지 않았던 목동들이 예수님을 알아보는 '눈뜬 자'로 나온다. 성탄절 이야기는 단순한 겨울철 목가적 이야기가 아니라, 본다고 하면서도 실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비유하는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담긴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또 "최근 위안부 협상은 전형적인 정치적 협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정치인들의 진정성과 도덕적 책임감이 결여돼 너무 아쉽다"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다가오는 총선에 대해서도 "현실은 결국 정치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인들을 선택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황 교구장은 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활동은 사회 정의를 고발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며 "하지만 스스로가 불의의 구조 속에 있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하며, 스스로에 대해 먼저 정의를 실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황 교구장은 인터뷰 내내 기자의 말에 "맞습니다! 맞습니다!"를 하며 배려해 주었다. 많은 이야기를 1시간 30분여 동안 황 교구장과 나누었지만 일관된 키워드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을 먼저 변화시켜야 세상과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그 가장 가까운 게 바로 자신이며, 더 나아가 주위(기초공동체), 그리고 세상이다. 타인을 향해 '마음의 무릎'을 겸손하게 꿇을 때, 타인과의 소통이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이다. 외부를 지향하기보다 오히려 그 자체에 머물러 생각하는 일을 우리는 성찰이라고 한다. 황 교구장이 던지는 신년 메시지는 종교인이나 일반인 가릴 것 없이 이러한 성찰적인 삶을 진지하게 살자는 것이다.  

황 교구장은 1953년 경남 밀양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주가톨릭대를 졸업하고, 독일 아이히슈태트가톨릭대에서 수학한 후 1983년 사제품을 받았다. 2007년 제4대 천주교 부산교구장으로 임명됐다.  


박태성 선임기자 pts@busan.com 

사진=강원태 기자 w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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