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3000호 2016.06.26 18면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버림의 삶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루카 9,5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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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독서와 복음은 한결같이 “부르심과 따름”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먼저, 1독서에서 엘리야는 엘리사를 부릅니다. 엘리야의 부름을 받은 엘리사는 가진 것을 모두 버려두고 엘리야에게 뛰어갑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엘리야를 보자마자 대뜸 부모에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합니다. 복음에서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대조적입니다. 하지만 엘리사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온 엘리사는 기르던 겨릿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자신이 쓰던 쟁기를 부수어 그것으로 고기를 구운 다음 사람들에게 주어서 먹게 합니다. 여기서 엘리사의 작별인사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행위가 아니라, 뒤에 있는 것들을 제대로 정리하기 위한, 모든 것을 제대로 버리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좀 더 엄격하게 말씀하십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 엘리사는 제대로 정리할 시간이라도 받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럴 여유조차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따르라고 하시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즉시 따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제자들 앞에는 엘리야가 아니라 예수님이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아니라 예수님이 계시다는 말은 종말의 때가 다가왔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언제나 종말을 코앞에 두고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의 시간적 여유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종말이 앞에 놓여 있다고 여기는 사람의 삶은 보통의 삶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느님 나라만 생각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의 삶이 이러해야 한다고 분명히 밝히십니다.

오늘 2독서는 이러한 종말론적 삶을 두고 자유로운 삶, 해방된 삶이라고 부릅니다. 육의 욕망에서 벗어나고 죄의 지배에서 벗어난 삶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자유로운 삶으로 부르심 받은 이들입니다.

가끔 세상과 떨어져 혼자 살면 죄를 짓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죄는 항상 관계 안에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특히,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들과 엮이며 짓게 되는 죄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 큰 부담입니다. 이 때문인지 교회는 성직자와 수도자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특별히 가족마저 끊어버리는 십자가를 요구합니다. 

그래야 진정 자유로운 삶, 해방된 종말론적 삶을 살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버림의 삶, 세상 욕망에서 자유로운 삶은 비단 성직자들만을 위한 삶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로운 삶, 해방된 삶,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초대하십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기본적으로 세상에 얽매여 살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런 삶을 거부한다면 우리 모두 세상 밖으로 나가야할 지도 모릅니다(1코린 5,10). 하지만 세상에 얽매여 살 수밖에 없다고 육의 욕망에 이끌려, 세상의 것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로 인해 죄에서 자유롭게 되고 해방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각자의 자리에서 자유로운 삶, 해방된 삶,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황 주일을 맞아, 영광스러워 보이는 자리이지만, 사실은 가장 많은 것을 버리고 살아가는 십자가의 삶을 사시는 교황님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교황님을 중심으로 모두 일치하여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조그만 힘을 보태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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