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3029호 2017.01.22 18면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억압의 땅에 빛으로 오신 주님

연중 제3주일(마태 4,12-23)

염철호%20신부의%20복음생각(16).jpg


오늘 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천대받던 땅이었던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과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지역이 영화롭게 되리라고 예언합니다(이사 8,23). 이 지역들은 예로부터 전쟁이 끊이지 않던 곳으로 갈릴래아 땅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곳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의 땅이었지만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이방 민족들에 의해 짓밟히곤 했던 땅이었고, 이방인들이 정착해서 살기도 했던 땅이기 때문에 유다 예루살렘에서 순수하게 신앙을 지키고 있다고 자신하던 유다인들은 갈릴래아 사람들을 어둠 속에 사는 이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 땅의 백성들이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이사야는 이런 짓밟힌 땅에 큰 빛이 주어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이사 9,1-3). 사제와 자칭 의인들의 땅인 유다 예루살렘이 아니라 부정하다고 비난받던 이들, 억압받던 이들의 땅에 빛이 주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이 짊어지던 온갖 멍에와 어깨에 멘 장대, 부역 감독관의 몽둥이를 부수실 것이기 때문에 큰 즐거움과 기쁨이 주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집트를 치실 때와 마찬가지로 적들을 물리치시고 억압하던 이들을 쫓아내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에 자리를 잡으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부르신 뒤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십니다(마태 4,23). 예수님을 통해 갈릴래아 땅에 큰 빛이 떠오른 것입니다.

사실, 이사야가 예언한 지 700여 년이 훌쩍 지난 뒤에 등장하신 예수님 시대에도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은 여전히 천대받던 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갈릴래아 땅에 사는 이들을 모아 당신 제자로 삼으시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래아 사람들을 모아 당신 제자로 삼으십니다. 어찌 보면 우리도 결국 어둠과 암흑, 죄와 죽음이 판을 치는 현대판 갈릴래아에서 주님 덕분에 모든 멍에와 무게를 덜어내고 주님을 따라나선 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함께 모여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화답송)이라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더욱 낮추어 주님만이 구원이심을 고백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자신이 어디 출신인지를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곧, 우리는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롭지도 않았고, 유력하지도 않은 이들이었으며, “세상의 비천한 것, 천대받는 것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1코린 1,26-31), 종종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리고 스스로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양 자랑합니다. 더 나아가 남들보다 자신이 낫다고 여기며 파벌을 만들고 교회를 분열시키곤 합니다.

이런 모습은 바오로 시대 때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그래서 오늘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인들에게 파벌을 조장하며 분열하여 교회를 망치지 말고 서로 겸손하며 일치를 이루라고 권고합니다. 제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억하라고 권고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 번 우리 모두가 천대받던 갈릴래아 출신임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그런 비천한 곳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 감사드립시다. 스스로를 존귀한 지방 출신으로 여기는 이는 결코 예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스스로 잘난 맛에 다툼과 싸움만 일으키며 교회를 분열시키는 이는 결코 하늘 나라를 이룰 수도, 그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부족함과 잘못을 고백하며 주님께 도움을 청합시다. 우리의 모든 죄를 치워 주시고 치유해 주시기를 간청합시다. 그러면서 남을 나보다 낫다고 여기며 겸손히 살아갑시다. 서로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됩시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1코린 1,17).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329 부산, 성가정 축복장 수여 2017.05.27 83
328 설립 90주년 축하하며 100년 향한 새복음화 다짐 2017.05.27 67
327 뮤지컬 사도 베드로 ‘찾아가는 공연’ 호응 file 2017.05.27 149
326 가톨릭신문 90주년 기념 창작 뮤지컬 ‘사도 베드로’ 부산 공연 file 2017.05.22 100
325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부산서도 순회 기도 file 2017.05.22 265
324 [부산 교육을 듣다] 김영규 부산가톨릭대 총장 file 2017.05.16 164
323 응답하라! 주님 사랑 전할 미래의 착한 목자들 file 2017.05.12 210
322 안대 쓰고 ‘희망의 눈’ 떠보아요...특별한 영화 관람 이벤트 호응 file 2017.05.12 76
321 "문화 사목으로 사랑 나눠요" file 2017.05.08 164
320 윤기성 신부의 사목 이야기 <16> 대통령 선거 file 2017.05.08 135
319 윤기성 신부의 사목 이야기 <15> 성주간 file 2017.05.08 144
318 윤기성 신부의 사목 이야기 <14> 우리 사회의 사순시기 file 2017.05.08 63
317 부산가톨릭대 ‘봉사의 날’ 선포식 file 2017.04.21 139
316 기독교계 부활절 행사 "부활의 의미는 생명의 순환" file 2017.04.14 255
315 KNN TV 방송 마음의 산책 - 홍성민 신부 강연(중독, 성스러운 질병) 2017.04.11 280
314 부산가톨릭대, '봉사의 날'선포식 및 제38대 총학생회 '사랑의 쌀' 나눔 전달식 2017.04.07 161
313 청소년 신앙 잡지 ‘꿈’ 10돌 맞아 계간지로 file 2017.03.24 144
312 KNN TV 방송 마음의 산책 - 윤기성 신부 강연(내 마음의 수도꼭지) 2017.03.23 282
311 부산교구 청소년 신앙잡지 월간 「꿈」, 창간 10주년 맞아 계간지로 재탄생 2017.03.22 222
310 [사설] 부산교구 ‘성당홈’… 복음화 활황 기대 2017.02.28 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