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한겨레 
게재 일자 2019.05.31 / 19면 
“120년만에 발굴해낸 ‘타케 신부의 선물’ 잘 키워야죠”

[짬] 대구가톨릭대 교수 정홍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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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청도의 가톨릭 피정센터인 솔숲성모마을에서 만난 정홍규 신부가
지난 5년간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에밀 타케의 선물>을 소개하고 있다.
김경애 기자


 
“2014년 8월 14일 이전까지 나는 에밀 타케 신부, 그의 묘지, 왕벚나무, 온주 밀감, 제주 하논 등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런 나에게 왕벚나무 이야기를 해준 분이 있다. 바로 대구 남산동 대구교구청 바로 앞에 사는 김규씨다. 그분이 나에게 지나가는 말로 할아버지가 들려준 에밀 타케의 왕벚나무 이야기, 왕벚나무에 막걸리를 준 이야기, 에밀 타케 신부의 장례미사를 집전했던 수녀원과 성당 이야기 등을 해주었다. 이 이야기로부터 나의 여정이 시작됐다.”

그로부터 5년만인 최근 <에밀 타케의 선물-왕벚나무에서 생명의 숲을 찾다>(다빈치) 책이 나왔다. 지난 19일에는 경북 청도군 매전면 덕산리 청도수목원에서 ‘에밀 타케 식물연구소’도 문을 열었다.

책의 저자이자 식물연구소 소장인 정홍규 신부(65·아우구스티노)를 지난 11일 청도의 솔숲성모마을에서 만났다.


 
2014년 교구청 주민의 ‘지나가는 말’
“에밀 타케 신부가 왕벚나무 심었다”
‘1898년 제주 선교~1952년 대구 선종’
다음날부터 기록·행적 찾아 전국답사
‘왕벚나무’ 유전자 조사·학술대회 등

5년만에 책 펴내고 식물연구소도 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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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청 성직자 묘지에 있는 에밀 타케 신부의 묘.



“김규씨에게 이야기를 들은 바로 다음날인 8윌15일 새벽 남산동의 성직자 묘지에서 에밀 타케 신부님을 찾아 처음으로 미사를 올렸어요. 그날부터 교구청 일대를 돌며 왕벚나무를 찾아냈지요. 등잔 밑이 어둡다고, 어떻게 수십년 동안 아무도 몰랐을까, 망연자실한 기분이었어요.”

그무렵 대구가톨릭대 부교수로 부임한 정 신부는 그날부터 타케 신부의 행적은 물론이고 그가 채집한 식물 표본과 심었던 나무들까지 답사하는 ‘120년간의 순례’에 나섰다.

에밀 타케 신부는 24살 때인 1898년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조선으로 파견돼 55년간 선교 활동을 한 뒤 1952년 대구에서 선종했다. 그는 부산 본당, 진주 본당, 마산 본당, 제주의 하논성당과 홍로성당, 목포 산정동성당, 나주 노안성당 등을 거쳐 1922년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 교수로 부임해 말년까지 30여년을 봉직했다.

정 신부는 특히 타케 신부가 선교 초반 13년간 머물며 왕벚나무, 구상나무(제주도 방언 쿠살낭) 등 식물 표본을 채집했던 제주도 여정에 집중했다. 1902년 타케 신부가 가장 먼저 부임했던 홍로성당 터가 있는 서귀포 면형의 집에서 한달간 머물며 하논성당 터와 은행나무를 지나 서귀포성당까지 타케 신부의 순례길을 찾아냈다. 타케 신부는 1만여점의 제주 식물표본을 유럽과 미국, 일본의 식물학자들에게 보내 지금도 세계 곳곳의 대학과 식물원에 실물과 기록이 남아 있다. 그가 가장 먼저 발견해 학명에 타케티라는 이름이 붙은 식물도 125종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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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규 신부는 <에밀 타케의 선물> 책 출간을 기념해 지난 5월 중순 제주도 타케 신부의 순례길을 또 한번 답사했다.
한라산 왕벚나무 자생지를 찾은 정 신부.
사진 다빈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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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유일의 논농사 지역이자 첫 천주교회가 있던 하논 성당 터에서
에밀 타케 신부의 순례길 표지석을 확인하고 있는 정홍규 신부.
사진 다빈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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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 서홍동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에밀 타케 신부의 온주밀감을 살펴보고 있는 정홍규 신부.
고사 위기여서 안타깝게 하고 있다.
사진 다빈치 제공


 

“우선은 호기심이 더 컸어요. 왜 타케 신부가 선교하러 와서 식물 채집에 몰두했을까. 그보다 앞서 일본에서 활동중이던 식물학자 위르뱅 포리 신부에게 배웠던 거예요. 1901년 신축교안(이재수의 난)으로 수많은 제주 가톨릭 교인들이 희생된 직후여서 선교 여건이 워낙 열악했는데,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식물 표본을 보내면 재정 지원을 해줬더군요. 동기는 그렇더라도, 두 신부의 교류 덕분에 한라산 왕벚나무가 일본으로 건너가고, 그 답례로 구마모토의 온주밀감이 제주도에 전래됐으니 흥미롭잖아요?”

정 신부는 1년간의 답사에서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대구 남산동, 마산 완월동, 나주 양천동 등 타케 신부의 여정마다 왕벚나무 고목들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타케 신부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왕벚나무를 심었는지 기록은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식물학자들에게 도움을 청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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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남산동 대구대교구청의 안익사 옆에 있는 왕벚나무.
에밀 타케 신부가 1922년 성유스티노신학교에 부임한 뒤 심은 제주산으로 확인됐다.
대구대교구청 제공


 

그는 2015년 6월 대구대교구에 요청해 교구청의 안익사와 대건관에 있는 왕벚나무 두 그루에 대한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김찬수 제주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조사해본 두 왕벚나무의 수령은 각각 88년생과 61년생, 타케 신부가 1922년 성유스티노신학교 교수로 부임한 이후 심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듬해 4월엔 대구가톨릭신학대 주최로 열린 ‘에밀 타케 신부님의 왕벚나무 통합 생태론’ 콘퍼런스에서 대구 교구청 88년된 왕벚나무의 유전자가 한라산 자생지에 있는 ‘천연기념물 159호 왕벚나무’와 일치한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1908년 타케 신부가 한라산에서 처음 채집해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일본 ‘사쿠라’와 다른 한국 토종식물이란 사실을 입증한 바로 그 왕벚나무의 피붙이로 확인된 것이다. 또한 비슷한 수령의 제주산 팽나무, 당광나무, 아그배나무 등도 남산동 일대에서 자라고 있었다.

“타케 신부를 알아갈수록 가톨릭 선교사로서나 식물학자로서나 우리 역사에 기여한 공로를 널리 알려야겠다는 소명이 분명해졌어요.”

2016년 12월 대구교구 100돌 기념으로 주교좌 범어대성당에 드망즈 갤러리를 개원하면서 열린 <에밀 타케 신부님을 만나다>(정미연 화가) 전시회가 대표적이다. 2015년 지역 최초로 개설해 원장을 맡고 있던 대구가톨릭대 사회적경제대학원을 통해 2017년 봄 ‘에밀 타케 왕벚나무 사진전’을 공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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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규 신부는 지난 5년간 에밀 타케 신부의 업적을 가톨릭교계 안팎으로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16년 대구교구 개설 100돌 기념으로 열린 ‘에밀 타케 신부님을 만나다’ 그림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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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에밀 타케 왕벚나무 사진전’ 공모에서 금상에 뽑힌 오지현씨 작품.

 

정 신부가 이처럼 ‘지나가는 말’을 놓치지 않고 역사 속에 묻힌 타케 신부를 발굴해낼 수 있었던 데는 사제로서 남다른 이력이 있었다. 1954년 경주의 불교 가정에서 나고 자란 그는 11살 때 천주교에 입문해 광주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1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대구 근교의 농촌지역에서 사목을 시작한 그는 가톨릭 농민운동에 참여했다.

“대구 달서구의 월배동 성당 재임 시절인 1991년 낙동강 페놀오염 사건 때 환경과 생태의 중요성을 절감했어요. ‘푸른평화’를 꾸려 폐식용유를 재활용한 ‘손비누 운동’도 하고, 두류공원에서 우리밀잔치 등 도농직거래 생태 평화운동을 시작했지요.”

그는 경북 영천의 ‘산자연학교’를 비롯해 여러 대안학교와 기관을 세워 ‘평화와 생명 교육’을 통해 사회참여 활동을 해왔다. 1980년대 초부터 서양신학과 현대철학에 대한 지식과 생태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30여권이 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쓰고 번역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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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9일 경북 청도군 매전면 덕산리 청도수목원 안에서 ‘에밀타케식물연구소’ 창립총회가 열렸다.
사진 다빈치 제공


 
   무엇보다 타케 신부와의 만남은 그에게 평생 매진해온 사목 활동을 성찰하며 새로운 길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2018년 봄 한달동안 제주 홍로성당에 머물면서 타케 신부의 영을 받아 책을 정리했어요. 사실을 넘어 진실을 찾는 영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누구도 혼자서는 지구를 구할 수 없다. 식물이 인간에게 신이 된다면 지구가 구원될 수도 있다’는 그의 신념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동지이자 후원자들을 만난 건 뜻밖의 행운이다. 청도수목원 안에 제주도 식물들을 모은 온실과 에밀타케식물연구소 자리를 마련해준 신아개발 손상명 대표와 정원 갤러리 카페 아자방의 강상윤 대표가 그들이다.

“앞으로 ‘아름다움을 순례하는 에밀 타케 신부의 생태영성’을 주제로 ‘식물신학’도 정리해보고 싶어요.”



정 신부는 식물학계와 언론도 그 길에 기여해주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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